비오던 날의 이별

by 공개된 일기장

생각해 보면, 언제 생각했던 대로 된 적이 있겠느냐만. 지지리도 뭔가 안 풀리는 하루였는데, 그냥 무감각하게 넘기려 애썼는데 기어코 무너졌다. 최악, 그거 한 단어면 되겠네. 환멸감, 증오심, 박탈감, 그리고 도저히 글로 써지지 않는 단어들이 몸을 감싸고 뇌를 채웠다.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이쯤 되면 알아차릴만 한데, 또 외면하다 걸렸다. 내가 문제지. 똑같은 실수, 똑같은 상황이 매번 반복되면 나 자신에게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거겠지. 사람으로서 별로 인 거지. 그냥 지나쳐도 되는. 아니. 지나쳐야 하는 사람인 거겠지. 내가 딱 그 정도겠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렇게까지 깊게 떨어져 본 적은 없었는데. 차라리 보이지 말지. 어제와 같은,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왜 내 눈앞에 보여서 이렇게 나 자신이 한심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확인해 주는 건지. 보통은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곤 하는데, 오늘은 도저히 정리가 안된다.

정리할 문제도 아닌 거지. 무엇을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어떻게라도 하면 나아지기는 하는 건지. 고칠 수나 있고, 무엇을 고쳐야 하며 하물며 왜 고쳐야 하는지. 문제도 없고 답도 없는 시험지에 틀렸다는 사선 하나만 그어져 있는 기분에 내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건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안 해야지. 거지 같은 기분과 하루에 그냥 잠식되어야지. 손 쓸 기력도, 생각도 이미 어딘가에 깊숙하게 떨어졌다. 어찌 보면 정말 사소한 거였는데, 신경도 안 쓰는 놈이었는데, 그 사소한 거 하나가 나도 모르게 쌓아왔던 댐을 터트렸는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어서, 감당하기도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눈 감고 싶어서. 더럽고 추접한 하루.

왜 비가 오나 했다. 왜 오늘 흐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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