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by 공개된 일기장

뭐야. 벌써 토요일이네. 요일 개념없이 흘려보낸 최근이었다.

신을 믿지 않으면서, 신을 찾은 적은 많다. 신은 얼마나 어이없을까. 자기를 믿지도 않은 녀석이, 필요할 때는 두 손 모아 자신을 찾는 부름에, 어찌나 가소로울까. 내가 신이었다면, 나같은 이들에게 소원을 들어줄 듯 말듯 지독한 장난을 쳤을 것이다. 가장 최근 신을 찾은 적은 5월이었다.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무너졌던 시기였다. 사실 그 감정은 뭐랄까. 믿기지 않는달까. 애초에 할아버지는 명절에만 찾아뵙기도 했고, 어려서야 자주 찾아 뵙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알바 핑계,군대 핑계로 이리저리 시간을 피해, 큰 유대관계를 쌓을 시간은 없었던 터라, 그냥 돌아가셨구나. 하며 벙쪘다.

우는 엄마를 옆자리에 태우고 장례식장에 새벽에 도착을 했는데, 아직 발인 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했다. 근처 외삼촌 집에서 엄마를 재우고, 형이랑 새벽에 나와서 담배를 폈다. 아빠가 해외에 있던 터라, 우선 아빠 올때까지 둘이 주위 어른과 사촌을 챙기자고, 힘튼 티 내지말기로 했다. 그래서 장례가 시작되고 2일간은 내가 상주인지, 장례식 직원인지 모르게 일을 했던 것 같다. 1일차 새벽에 부조함을 지키며 여러 생각이 지나갔다. 이게 뭔 일이지. 분명 2주전까지만해도 어버이날 기념으로 밥 사드리고, 카페에 가서 수다도 떨었던 할아버지인데, 대체 왜. 그때 신을 찾았다. 처음은 원망이었다. 그만 장난치라고, 어떻게 이런 식이냐고 따져물었다. 대답없는 원망의 생각은 꼬리를 내리고, 후회와 반성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제발 남아있는 아빠만큼은 빠른 시일내에 괜찮아지게 해달라고. 아빠만큼은 빠른 시일내에 슬픔을 털고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며 빌었다. 그는 무슨 대답을 했을까. 기독교인이 아닌지라, 대답은 듣지 못했다. 기독교인 친구들 말로는, 신을 믿지 않아 나는 천국에 못 간다는데, 그럼 난 어디서 대답을 듣지. 2일차 오전에 아빠가 한국에 급히 귀국해, 장례식장으로 들어왔다. 내가 살면서 본 아빠의 모습 중 가장 처절한 모습이었다. 아빠가 무릎을 꿇으며 우는 순간을 봐버렸다. 아. 이 순간을 보지 않길 바랬는데, 나도 보게 되었구나. 어떠한 위로도 닿지 않을 것 같아, 그저 나도 옆에서 이제껏 참고있던 슬픔을 터트렸다.

장례식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된 시간이었다. 장례식은 고인을 위한 자리인 줄 알았는데, 고인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남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3일차에 아빠 친구들이 와서, 아빠와 이야기 나누며 순간이나마 아빠가 할아버지 생각을 안하게 되는 것 같아보였다. 나 또한 동네친구들이 멀리 장례식장까지 와줬다. 동네 친구들끼리 암묵적으로 경조사가 생기면, 어디든 꼭 다 같이 가곤 했는데, 이번엔 내 차례였다. 이전에 친구들의 경조사에 참석했을 때는 우리가 가면 민폐지 않을까. 정신없을텐데. 이 생각이었는데, 친구들이 찾아와주고 보니, 나도 잠시나마 잊고 숨통을 틔었던 것 같다.

2일차 새벽에 잠시 담배 한 대 태우러 나왔다. 내일이면 할아버지와도 진짜 끝이라, 정신없이 보내느라 잊고 있던 내 감정을 마주쳐도 될 것 같았다. 나도 슬프다고,어른인 척 하느라 힘들다고 징징대고 싶었다. 주소록을 봤는데, 차마 말할 사람이 없었다. 내가 이리 사람이 없었나. 분명 의지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주소록을 한참 보다, 핸드폰을 닫고, 식장에 들어가 텅빈 빈소 앞에서 앉아있었다. 분명 눈물이 드라마처럼 나올 것 같았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그냥 앉아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어가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무감각해져가는 과정인 것 같다.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연연해하지 않고, 금방 털어내는 습관을 길들이는 과정. 그런 거라면, 아직 나는 어른이 아님에 확신한다.

이번년은 기억이 그닥 좋지 않다. 딱히 누군가에게 온전한 사랑을 배푼 적도, 개인의 성과도 이루지도 않았던 한 해였다. 그래도 한가지 얻었다면, 어떤 힘을 길러야 어른이 되는구나를 알았다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마음 쓰지 말기. 금방 털어내고 일어나기. 아빠가 초등학교 3학년때 해준 말이었다. 울지않고, 씩씩하게 일어나서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기. 처절한 아빠의 모습과 흙먼지를 묻은 채 자전거에 올라타는 나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마지막 발인 날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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