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형이상학적 공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철학 또한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경험적 판단과 형이상학이 얽혀 있다. 그런데 철학이 다른 학문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다른 학문들은 형이상학적 공리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데 반해 철학은 공리를 의심하는 것을 과제로 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에는 보편적 공리가 없다. 철학자마다 자기 나름의 공리를 세운다. 진리가 존재하는지, 진리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도 공리에 속한다. 철학은 보편적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만 결코 성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런 점이 철학의 한계인 동시에, 철학이 다른 학문보다 더 보편적일 수 있는 이유이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근저에 있다. 혹은, 어떤 학문 혹은 예술이든 그 학문/예술의 전제에 대한 탐구는 철학적이다. 철학은 철학자의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이지 않다. 우리가 철학을 배우는 이유는 스스로의 가치관을 확립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