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우리가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것은 피상적인 유사점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너무 부정확하게, 이름을 통해 편리하게, 자연을 재단한다. 이 책에서는 물고기를 예시로 드는데, 물에 산다는 것 자체가 해부학적으로 큰 차이를 만들지는 않는다. 겉보기에는 물에 산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물에 사는 생물들은 땅에 사는 생물만큼이나 다양하고, 또 물에 사는 생물들과 땅에 사는 생물들 간의 뚜렷한 경계는 없다. 생물 계통을 분류하는 데 있어서도, 물고기와 땅의 사는 동물들 간의 피상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해부학적 구조는 대체로 유사하다.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의 삶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발견하려고 하는 글쓴이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던은 물고기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명명하는 데 평생을 바쳤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연에 질서가 있다고 믿었는데, 그 질서는 인간을 꼭대기에 두는 도덕적 질서였다. 그의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생물은 열등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글쓴이(룰루 밀러)의 아버지는 과학자였고, 종교를 믿지 않았다. 그는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인간이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믿지 않았다.
밀러는 20대 초반에 우연히 조던에 대한 일화를 듣게 된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나 조던이 평생 수집했던 물고기 표본들이 망가지고 유리병에 넣어둔 이름표들이 뒤섞였을 때, 그가 바늘을 가지고 비늘에 이름표를 꿰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밀러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시간이 지난 후, 밀러는 조던이 자신이 깨닫지 못한 삶의 목적을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자연의 끊임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조던의 집념은 밀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밀러는 조던의 삶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사하면 할수록 조던의 잘못된 점들을 알게 된다. 마침내 밀러는 길을 찾는데, 우주의 그 모든 혼돈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혼돈에 인위적으로, 인간중심적인 질서를 부여하려 해서는 안 되고, 인생을 무의미 속에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어류라는 범주는 없다. 조던이 평생동안 수집하고 연구했던 물고기라는 단일한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룰루 밀러는, 과학이 그 사실을 밝혀낸 것은 자연이 조던에게 행한 마지막 복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조던의 집념은 과학자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에 내재된 질서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을 것이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그것을 찾아냈는지 알 방법은 없다. 우생학은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였고 조던이 그토록 찾아 헤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진화에는 도덕적 우열 같은 것은 없다.
사물에 붙이는 이름은 편리하다. 그러나 이름은 잘못 붙여질 수 있다. 이름은 인간의 세계 인식에 기초가 되는데, 잘못 붙여진 이름은 사물의 진정한 특성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에 붙여진 많은 이름들이 그 사람의 본질을 가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