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중반까지는 이런 생각을 했다. 자연의 시간은 순환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일직선이다. 가구야 공주는 숯 굽는 사람에게 ‘봄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윤회 개념은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죽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일을 본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꽃은 떨어졌다가,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피어난다.
가구야 공주가 달에서 왔다고 할 때 이런 생각이 살짝 바뀌었는데, 달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을 상징한다고 보면 달에서 왔다가 달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의 순환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달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부처(혹은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진짜 달이라고 상상해보면 옛날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사람은 각기 고유한 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연의 순환적 시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기억 덕분이다. 가구야 공주는 산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뜻대로 수도에 와서 아름다움, 돈, 권력으로 유지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녀가 처음에 수도에 왔을 때는 아름다운 옷, 보석, 음악을 좋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귀족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울 뿐, 그녀가 보기에는 정교하게 꾸며진 가짜일 뿐이라는 것을 꿰뜷어본다. 그녀는 달에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지 않았을까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대나무에서 왜 금과 옷이 나왔고, 가구야는 왜 공주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두 가지 정도 해석을 해 보면, 그런 삶을 살도록 운명지어져 있었다는 것을 표현했거나, 혹은 금과 옷을 보낸 존재가 부부와 가구야에게 선택지를 주었던 것이다.
가구야 공주는 이전에도 무수히 후회했겠지만, 달에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만약 자신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혹은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달이나 궁궐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가구야 공주가 궁궐 생활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 때 산에서 떠나지 않고 그대로 살았더라면 행복했을 것이다. 삶을 끝까지 다 살아보고 난 후에야 어떤 삶이 행복했을지 깨닫는 것은 모든 인간이 겪는 딜레마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오래된 이야기의 교훈이자 본질적인 주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