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리엔테이션 이후 여유로운 한 달

by 송한결

흔히 의대 본과 1,2학년을 고등학생에 비유한다. 한 학기 내내 동기들 모두가 같은 강의실에서 같은 수업을 듣기 때문이다. 살짝 다른 점이 있다면 K-고등학교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공부량과, 공부가 하기 싫을 때면 종종 하게 되는 유급 걱정일 것이다. 아직 본과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예과 2학년 2학기 때도 유급을 주기 때문에, 유급할지도 모르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모래사장 속의 모래알 하나 정도는 알고 있다.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처럼(해본 적은 없다), 확률적으로 거의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본능적으로 무서운 느낌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작년에 예과 2학년을 무사히 마치고 본과로 진급했다. 보통 본과는 예과에 비해 조금 일찍 개강하기 때문에, 오늘은 개강 한 달이 되는 날이다. 정확히 말하면 개강 오리엔테이션을 하고나서 한 달이 흘렀다. 오리엔테이션 다음 날부터, 모두가 알고 계실 어떤 이유로 인해 학사일정이 연기되어서 언제쯤 수업을 할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대학교 합격 이후 입학을 기다릴 때 이후로 지금처럼 여유로웠던 때가 없다. 지금 추세로 봐서는 4월 10일 이후에나 수업이 가능할 것 같다. 아무래도 방학이 없어질 것 같다.

학사일정 연기가 공지된 날, 더 이상 기숙사에 있고 싶지 않아서 곧바로 본가에 왔다. 집에서 딱히 하는 일 없이 영화 보고, 책 읽고, 브런치에 글도 올리고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처음에는 편했지만 심심함의 밀도가 점점 높아졌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예습은 하고 싶지 않아서, 책을 많이 읽고 영화를 보아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았다. 지금쯤이면 중간고사를 보고 있어야 하는데 내가 왜 여기에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한가한 와중에 글감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본과 생활을 위주로 에세이를 써보면 좋을 것 같았다. 첫번째 주제는 2월 19일 해부실습 집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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