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생활의 시작
일반적으로 의예과 2학년 2학기 때 해부학을 배우고, 의학과(본과) 1학년 1학기에 해부실습을 진행한다. 팔, 다리, 복부 등의 혈관, 신경, 근육 등을 직접 확인하고, 여러 가지 수술 도구의 사용법을 익힌다.
2월 19일 월요일에 개강 오리엔테이션과 첫 해부실습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후 수업들이 제대로 진행될지 아닐지 불확실했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해부실습 수업은 하지 않고,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인 집도식만 하게 되었다.
해부실습은 6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서 이루어진다. 조장이 나눠주는 가운과 명찰을 받고, 마스크를 쓰고 실습실에 들어갔다. 실습실에서는 조별로 테이블이 하나씩 있고 그 위에 하얀 천으로 덮인 시신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엄숙한 분위기가 되었다. 적어도 대부분의 동기들은 가벼운 마음이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시신이 놓인 테이블에 앉아 잠시 기다리면서, 이분 또는 유가족분들은 어떤 마음이 들어 시신을 기증해주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곧 해부실습 지도교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실습에 관해 주의사항 몇 가지를 말씀해주셨다. 이런 주의사항들이 고인분에 대한 태도와 직결되기에 한마디 한마디를 주의깊게 들었다. 내용을 요약해서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것을 그대로 옮겨본다.
첫째, 감사하라. 고인과 유가족 분들께, 교수님과 조교님을 비롯한 선생님들께, 나의 부모님들께.
최근에는 거의 100% 고인 혹은 유가족의 동의 하에 시신을 받는다. 시신을 기증해주신 고인 분을 카데바(보통명사)로 부르지 말고 이분, 혹은 저분이라고 부르라.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의학 지식과 술기는 스승에서 제자로 도제식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선생님들께 감사하라.
본인이 뛰어나서 이 자리에 온 것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살아가다보면 알게 된다.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라.
둘째, 알려고 하라.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해부를 잘 할 수 있다. 지식도 없고 왜 하는지도 알지 못한채로 실습하는 것은 칼질에 불과하다. 한 시간째 메스를 들고 무의미하게 긋기만 하는 학생도 있었다. 부디 적극적으로 하라.
셋째, 동료들과 함께하라.
같이 협력해야만 제 시간에 해부를 끝마칠 수 있다. 역할을 돌아가면서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