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Tic)이 숲으로 사라지던 날

by 무심

도진이의 눈은 마음보다 먼저 날씨를 알아챘다. 계절이 바뀔 때면 비염 알레르기가 찾아왔고, 아이는 가렵다며 눈을 세게 감았다 뜨곤 했다. 처음엔 그저 안약을 넣어주면 끝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이의 눈 깜빡임은 날씨와 상관없이 잦아졌다. “도진아, 왜 그렇게 눈을 깜빡여?”라고 물어보면 아이는 천진하게 대답했다. “내가? 몰라. 그냥 가려워서 그런가 봐.”


알레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엄마인 나는 늘 조마조마했다. 그러다 병원에서 들은 말은 내 가슴에 돌덩이를 얹었다. “알레르기라고 하기엔 횟수가 너무 잦네요. 혹시 심리적인 부분이 원인일 수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보세요.”


가벼운 틱(Tic) 증상은 초등학교 입학 시기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다시 시작한 그 ‘불안의 신호’는 내게 더 무겁게 다가왔다.


12층 아파트, 매일 반복되는 학원 시간표, 그리고 늘 바쁘게 달려오던 도시의 일상이 아이를 숨차게 했던 건 아닐까. 미안함이 앞섰다. 영월에 와서도 상황은 금방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환경과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며 증상이 더 심해질까 봐 나는 아이의 눈동자만 살필 뿐이었다.


변화는 아주 천천히, 숲의 계절이 바뀌는 속도로 찾아왔다.


도시에서는 학원 수업 시간에 맞춰 시계를 보며 급하게 다녀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하교 후 가방을 던져두고 계곡으로 향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펜션 마당에 모여 배드민턴 라켓을 잡았다. 처음에는 그저 멀찍이 서서 구경만 하던 도진이도 조금씩 아이들 틈으로 섞여 들어갔다.


태블릿 대신 라켓을 쥐고, 콘크리트 바닥 대신 자갈이 깔린 마당을 뛰어다녔다. 펜션 평상에 모여 간식을 나눠 먹으며 아이의 웃음소리는 조금씩 커졌고, 덩달아 목소리에도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월에 온 지 3개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문득 도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는 숨을 멈췄다.


‘어...?’


아이의 눈이 고요했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더 이상 요동치지 않았다. 혹시나 내가 의식하면 아이가 다시 긴장할까 봐 내색은 못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숲의 고요함과 마당의 활기가 아이의 불안을 조금씩 씻어내 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도진이에게 놀라운 말을 들었다. 겨울이 시작되던 어느 하굣길이었다.


추수가 끝난 빈 논이 황량하게 펼쳐져 있었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아이들을 태우고 여느 때처럼 펜션으로 향하는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도진이가 툭 던지듯 물었다.


“엄마, 우리 또 이사 가야 해?” “응? 이사?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백미러에 비친 도진이를 보았다. 창밖을 보며 아이는 무심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 여름에 여기로 이사 왔잖아. 또 다른 데로 가야 하는 건가 해서.” “결정된 건 없어. 도진이랑 도윤이가 다시 돌아가고 싶으면 가는 거고, 더 있고 싶으면 안 가도 돼. 너희 둘 생각이 제일 중요해.”


나의 대답에 도진이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응. 그럼 나 여기서 졸업해도 돼?”


“여기? ...옥동초등학교에서?” “응. 중학교까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 초등학교는 여기서 졸업하고 싶어.”


순간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영월에 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다시 돌아가자며 울었던 아이였다. “엄마는 나빠, 나쁜 사람이야”라는 말을 내뱉던 아이가, 이제는 이곳을 진짜 학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잠자리에 누운 도진이에게 다시 물었다. “도진아, 아까 여기서 졸업하고 싶다고 했잖아.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냥... 여기가 좋아졌어.”


도진이가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리며 말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내 마음에 쌓여 있던 짐을 쓸어내리는 한마디였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옆에 누워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그날 밤, 나는 영월에 온 이후 처음으로 걱정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불안에 떨던 아이의 눈꺼풀이 고요하게 멈췄고, 아이는 이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농어촌 유학을 결심했던 그날의 떨림보다, 합격 소식을 들었던 그날의 기쁨보다 더 큰 감동이 밀려왔다. 영월의 숲은 조용히 도진이의 불안을 품어주었고, 아이는 그 품 안에서 비로소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 영월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었다. 틱(Tic)이라는 이름의 상처를 지우고, 건강한 꿈을 심어준 진짜 ‘우리 집’이 되고 있었다.


영월의 숲이 아이를 품어주었다면, 영월의 이웃들은 서툰 엄마였던 나의 곁을 지켜주었다.


나의 서툰 적응기는 윗집에서 부어준 따뜻한 ‘마중물’ 덕분에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다. 낯을 가리면서도 이웃에 대한 호기심으로 조심스레 손을 내밀던 채아 엄마는, 어색한 침묵을 깨고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준 연결고리였다.


에너지가 넘치는 첫째 채아의 발소리와 다정한 손길로 동생을 챙기던 차분한 둘째 채은이, 그리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4살 막둥이 채이의 애교까지. 세 자매가 뿜어내는 제각각의 빛깔은 펜션의 단조로운 일상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정적인 우리 가족의 문을 열고 다가와, 옥동의 가을을 북적이는 행복으로 물들인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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