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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Nov 22. 2022

풋살장의 실패자

나의 풋살시대

오후 5시, 아이디와 비번을 정성스레 처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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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이름 석자 옆에 붙은 단어로 시선을 돌렸다.       


‘불합격’     

불합격. 썩 유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슬프다거나 좌절감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강렬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엄마의 괜찮다는 한 마디도, 아이들이 ‘엄마 내년에 다시 시험 쳐’ 라는 말도 간지러울만큼 별스럽지 않았다. 합격한 동료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열렬히 축하드렸다.      

떡국 한 그릇에 낮에 만들어 두었던 계란 샐러드를 왕창 넣은 샌드위치를 목구멍 끝까지 쑤셔놓곤 느릿느릿 옷을 껴입었다. 풋살이나 가야지.      


패스, 드리블

패스, 드리블

패스, 드리블의 반복     

좋아, 땀이 나기 시작한다.      


계속 된 반복에 몸이 익어갈때즈음 감독님이 다른 훈련을 제안했다.     

패스, 리턴, 패스, 크로스였던가

패스, 크로스, 리턴, 패스였던가

집에 돌아와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까지도

난 감독님이 그 순간 뭘 주문하셨던건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때부터였나

나 혼자 마구 꼬이기 시작했다.

팀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내 팔다리와 영혼은 각자 별개의 의지를 가진 생명체인양 제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였다고 썼지만 그냥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같았단 표현이 더 적절했다. 대체로 같은 자리에 서서 팔 다리만 허우적대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잠깐,

지난주부터 경기를 할 때 감독님이 만드신 룰이 있는데 내가 공을 잡으면 다른 사람들은 뺏을 수 없다는 핸디캡과 내가 골을 넣으면 2점을 득점한다는 엄청난 정책이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조건에도 불구하고 조아라 보유팀은 항상 패하고 있는데 사실 이 조차도 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우린 모두 취미로,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뭐 여튼 오늘도 다른 날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내게 성장할 기회를 주려고 그리고 득점의 열매를 맛보게 하려고 부단히 공을 패스해주셨지만 조아라는 역시나 노골.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황금같은 기회들이 서너번 있었는데 난 그걸 받아먹질 못했다. 밥상을 차려준 정도가 아니라 소화 잘 되라고 미리 씹어 입안에 넣어줬는데도 삼키질 못한 수준이랄까. 그래도 난 괜찮았다. 그냥 좀 쪽팔릴 뿐.

      

그렇게 마지막 1분.

그 마지막 1분에 상대팀에서 느슨한 나를 놓치지 않고 한 골을 넣었다.

공을 먹은 그물이 마구 흔들렸다. 경기종료를 알리는 골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뭐 때문에 눈물이 나는거야.

이건 그냥 취미잖아.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잖아.

어디 경기를 나갈 것도 아니고 국대가 될 것도 아닌데 대체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내 마음 속에서는 난리가 났다.     

‘어쨌든 여기서 울면 분위기 이상해진다, 무조건 참는다, 참아’      

그때부턴 난 온 신경을 차오른 눈물이 눈 밖으로 탈출하지 않게 단속 하는데 쏟았다.     


사실 오늘 경기를 하면서 벌어진 상황들은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아라씨, 드리블 해봐요’

‘아라씨, 일대일 해봐요’

‘아라씨, 수비 넘어봐요’

훈련 때 아무리 열심히 드리블을 연습해도 막상 경기에서 공이 내게 오면 난 3초도 그 공을 내 발에 붙여 놓지 못했다. 풋살공이 거대한 불덩이라도 되는 양 내게 넘어오는 순간 다른 곳으로 넘기기에 급급했다. 우리 팀이건 다른 팀이건 상관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관이 없다기보단 그걸 신경 쓸 여력조차 없을 만큼 이 공을 내게서 멀리 밀어버리는데 급급했다.     


상담현장에서 내가 그랬다.

내담자의 문제에 직면하고 해석을 해야 할 타이밍만 마주하면 왜인지 나는 늘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 문제를 안고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다. 직면하지 못했고, 그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 문제로 나는 개인상담을 받기도 했고 급기야 상담수련까지 시작했다.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수련은 재밌었다. 수련 후 상담현장에서 좀 더 자신감이 붙었고 실제로 내담자와 의뢰기관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수련을 받고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면접시험에까지 이르렀다.     


재수없을지 모르지만

난 한 번도 면접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해당 면접시험에선 떨어지더라도 동 기관 혹은 동 계열기관에서 이후에 다른 자리를 제안하셨기에 내 체감상 난 면접에 떨어져본 적이 없는, 그래 면접왕이었다.      


그런데 풋살장에서 나는 매번 매 순간 실패한다.

실패를 경험하고 실패를 반복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실패가 되려고 풋살장에 오는 수준이다.

내 인생에서 이토록 내가 멍텅구리 같은 날들이 있었을까 싶은 정도다.      

마지막 일 분, 상대방이 골을 넣는 순간

나는 분명 울었다. 용케도 눈물을 막아냈지만 나는 분명 눈물이 차올랐다.      


면접 불합격, 실패의 충격이 사실은 너무나 컸었던걸까

부족한 점을 채워보겠노라 수련을 하고 시험을 쳤던 날들에 대한 위로일까, 그만하면 되었다고 이제는 안되는 건 포기하자는 후련함일까...

지금 나는 나의 눈물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남편이 묻는다.

“아라야, 오늘 풋살 어땠어?”

“      고”

“뭐라고?”

“     다고!”

“뭐라고?”

“내가 머저리 같았다고!”     


“그래서 이제 풋살장 안갈라고?”

“뭔 소리야? 이 악물고 가야지!”     


나는 실패를 배우러 풋살장에 간다.

실패를 반복하고 실패가 되려고 풋살장에 간다.      


나는 풋살장에 간다.






* 기존상담은 청소년상담사의 자격으로 진행하였고, 추가로 학회 수련과 시험을 치룬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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