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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Aug 25. 2023

나는 그런 성교육을 한 적이 없다고

 


성폭력 예방교육을 마치고 교실 밖으로 나오는데 "선생님!" 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붙든다.

뒤돌아 보니 다급하고도 호기롭게 부른것 치고는 쭈뼛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세 명의 학생이 서 있다.

잠시간 서로 미루는 듯 쑥덕이더니 이내 말을 꺼낸다.


"선생님,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거에요?"


진짜진짜, 장난 아니고 정말 너무 궁금하단다.

정자 난자가 만나서 아기가 되는 건 알겠는데, 대체 어떻게 만나는지...

하며 말 끝을 흐린다.

혹시나 내가 짖궃은 장난으로 여길까봐 정말 장난이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란다.


그들의 간절한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미안해, 알려줄 수 없어"


그렇다. 이게 현실이다.



오늘만 해도 나는 학교 성교육에서 '청소년도 동의만 하면 성관계 해도 된다'고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글을 봤다. 최근 관련 기사만 봐도  학교 성교육이 엉망이라는 둥, 성관계를 장려한다는 둥, 조기성애화를 시킨다는 둥 도서관의 성교육 책들이 검열을 당하고 서가에서 빼야 한다며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심지어 몇해 전 우리 시부모님께서는 어떤 전단지를 내미시며 "너도 이런 성교육하니?" 라고 하신 적이 있었는데 세상에나 그 전단지에는 각종 다양한 체위를 담은 그림과 함께 그것이 요즘 학교 성교육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었다. 억울함과 당혹감이 스치우는 가운데 그나마 내게 작은 웃음을 준건 그 다양한 체위를 모두 옷 입은채로 재현하고 있다는 정도?


 

다시 "미안해, 알려줄 수 없어" 로 돌아가보자면 성교육 현장 밖의 일부 사람들 즉 <학교 안에서 전문가랍시며 설치는 성교육 강사들이 동의만 하면 성관계 해도 된다고 가르치고, 동성애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그 '일부 사람들'이 나는 어떤 측면에서는 고맙기도 하다.

외부 성교육 강사가 학교 안에서 감히 그런 발언을 할 '파워'가 있었던가?

그 정도의 파워와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니. 참 감사할 따름이다.


여전히 공교육에서의 성교육 시간은 성폭력예방교육으로 퉁친다. 내가 의뢰받는 교육의 95% 이상이 성/젠더 폭력예방교육이다. 폭력예방교육만 하기에도 40~50분의 시간이 모자른데 어느 천년에 성관계 얘기까지 할수있을까?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강의 전 강사에게 성적자기결정권, 자위, 동성애 이런 민감한 이야기는 아에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기까지 한다. 무엇이 민감한지까지도 다 결정해준다는 거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호기롭게 나는 나대로 강의를 하겠다?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단 한 번은. 두 번은 없다.

왜냐? 다시는 안부를거니까.

단 한번 딱 한 곳의, 단 하나의 반에 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런 얘기를 막상 한다고 한들 그 강사에게 남는게 뭐가 있을까? 학급 수업비 5만원?  정녕 '청소년도 동의만 하면 당연히 성관계 해도 된다' 라는 생각을 대중일반에게 심어주기 위한 시도였다고 하기에는 너무 효율이 떨어지는 방법이 아닐까?


그리고 학교 강의를 나갈 때 학교에서 마음에 드는 강사 개인에게 연락하는 방법도 있지만, 보통 학급 수업의 경우 작게는 두 세반 많게는 열 몇반의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이 아닌 '기관'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강사 개개인의 역량과 신념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내가 속해있는 기관 혹은 나를 파견해준 기관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튀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은 성적행동은 성폭력'이다. 라는 교육을 주욱 해오고 있는데,

이것을 '동의만 하면 성적행동은 OK' 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건 성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문해력의 문제이니 어서 서점으로 달려가서 관련 문제집를 사서 폴도록 권하고 싶다.


이야기가 널을 뛰는데 다시 돌아가서

"미안해, 알려 줄 수 없어" 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왜요?" 하고 반문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는 성폭력 예방교육이고 그 외의 이야기를 하다가 민원이 들어오면, 학교, 나, 나를 파견해준 기관 모두 곤란해지거든" 이라고 대답했다.


"비밀로 할게요! 절대 비밀로 할게요"


아이들의 간절함을 뒤로하고 나는 나와 나를 파견해준 기관의 안위를 위해 비겁하게 돌아섰다.


성교육강사와도 탄생과 생명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 나눌 수 없다면

대체 이 아이들은 누구를 통해, 무엇을 통해 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

뭐, 어렵지 않게 유추하실 수 있을테니 더 말을 하지 않겠다.


아이들을 조기성애화 시키는 것은

성교육을 해서가 아니라 성교육을 안해서임을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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