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oW Culture : 개념미술 작가 온 가와라
일본 출신의 개념주의 미술가인 온 가와라는 1965년 이래 뉴욕에서 생활하며 의식과 시간의 본질을 탐구해왔습니다. 단색조의 배경 위에 그날의 날짜를 적고 뒤에 *당일의 뉴스를 스크랩해 넣은 '날짜 그림 Date Painting'이라 불리는 《오늘 Today》 연작은 1966년 1월 4일부터 제작되어 2014년 작가의 죽음과 더불어 완성되었습니다. *얼마 후 스크랩한 뉴스를 넣는 작업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작가의 <오늘 Today> 연작 중 첫 번째 작품
작가의 또 다른 연작으로는 자신이 이동한 경로를 지도 위에 기록한 《나는 갔다 I Went》,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담은 《나는 만났다 I Met》, 매일 아침 작가가 일어난 시각을 고무인으로 찍고, "나는 아직 살아있다 I AM STILL ALIVE"는 메시지를 담아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보를 치는 작업인 《나는 ...시에 일어났다 I Got Up At》 등이 있습니다.
《오늘 Today》 작업 시에 작가는 스스로, 혹은 시간이 정한 규율을 엄격히 지켰습니다. 8개의 규격화된 캔버스를 두고 하루 최대 작품 수를 3점으로 정하였으며, '5일'을 그리던 중 24시간이 지나 '6일'이 될 때까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면 작품을 폐기하였죠. ‘5일'은 전적으로 '5일'을 증명하는 데 쓰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며, 그날을 증명함으로써 작가 또한 '5일' 을 살아냈다는 진술의 의미로도 보입니다.
온 가와라는 시간 앞에 유한할 수밖에 없는 숙명과 마주하며 작가 자신이 서 있는 시간을 매일 수련하듯 기록하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일상 자체를 작품으로 치환했습니다.
그는 시간의 개념을 보다 확장하여 《1백만 년(과거) One Million Years(Past)》와《1백만 년(미래) One Million Years(Future)》라는 책 형식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발표하였는데요, ‘PAST'에선 69년을 기점으로 B.C 99만 8,031년까지 100만 년의 숫자들을 타이핑했고 'FUTURE'에서는 1996년부터 100만 1,995년까지의 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5권씩, 각각 1만 페이지에 달하는 책에는 각각 부제가 달렸는데, 과거판에는 ‘지금 살고 있고 또 살다간 모두를 위하여’, 미래판에는 ‘마지막 한 명을 위하여’ 라고 합니다.
온 가와라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본 순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벽화가 수만 년 지난 후에도 다른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예술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 생활로서 존재하는 예술 활동에 몰입하게 되죠. 작가가 타계한 2014년 이후에도,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시간’에 대한 인간의 한계를 수용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그러한 '개념'에 호기심을 갖고 누군가는 유한성을, 누군가는 존재 증명을 읽으며 개인의 태도나 가치관을 정립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디언지는 그의 부고 기사에서 “우리의 시간이, 개인으로서나 종(種)으로서, 우주적 관점 안에서 본다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라고 적었지만 작가가 스크랩한 뉴스들처럼 그 찰나의 순간 안에 이를 살아내는 수많은 소리와 행위들이 담겨있는 것처럼요.
온 가와라는 자신에 대한 이력이나 인터뷰, 사진을 거의 허락하지 않고 나이조차 태어난 날로부터 지나간 날을 총합한 숫자로 표기했습니다. 카와라의 미술활동을 대리했던 뉴욕의 데이비드 즈뷔르느 갤러리 홈페이지에는 그의 이름 뒤에 ‘29,771days’라는 생존일이 기록되어 있죠. 하지만 그의 사망 이후 몇 년간 그의 트위터 계정에 하루 두세 차례씩 ‘I am still alive’라는 메시지가 업데이트 되었는데,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그가 시간의 강박에서 벗어났음을 말하는 거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