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리, 강렬하게 빛나던 태양의 열기도 시나브로 사그라지고 인적이 뜸해지는 해변의 이곳저곳에서 나뒹굴고 있는 쓰레기가 처연함을 더하는 풍경이다.
이때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아 여름 한 철의 뜨거웠던 열정은 가시고 휑한 마음의 빈자리가 아물지 않은 상처 인양 아직 마음은 뜨거웠던 지난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따라 풍요와 수확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지금은 망설임 없이 지난 열정의 시간을 떠나보내도록 하자.
젊음의 상실, 그 절망에 대하여
한편, 이와는 달리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하여 치명적인 절망에 도달하는 이야기가 있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라는...... 이 영화는 보통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나는 '베니스에서 죽다'라는 문장이 지닌 뉘앙스를 더 좋아한다.
이 영화는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원작은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라는 작가가 타지오라는 미소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은 주인공을 작곡가 구스타프로 원작과는 다르게 설정했을 뿐 그 외 인물의 설정이나 스토리는 동일하게 영화를 제작했다. 따라서 이 영화는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부터 동성애 코드로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이 영화를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싶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구스타프는 악화된 건강과 고갈된 창작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베니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구스타프는 베니스에서 머무는 중 우연히 먼발치에서 스쳐 지나간 타키노라는 이름의 미소년에게 마음이 이끌리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구스타프가 베니스로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로부터 구스타프가 타키노라는 소년에게 마음을 두게 된 원인에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구스타프는 당시 건강과 함께 작곡가로서의 창작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신에게서 떠나가는 젊음에 대한 희구가 미소년 타키노에 대한 감정을 유발한 것은 아닐까.
나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는 소설과 영화를 하릴없이 떠나가는 젊음에 대한 상실감을 동성애적 감성을 빌려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영화의 엔딩 신은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간직한 채 해변에서 죽어가는 구스타프의 모습을 롱 테이크로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갈구하던 젊음 대신에 죽음이라는 치명적인 절망을 맞이하는 구스타프의 마지막을 우리에게 깊이 각인시키며.
삶의 양 극단 사이의 음악, 말러
이 영화의 엔딩 신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이 말러의 아다지에토(adagietto, 조금 느리게), 말러의 교향곡 5번의 4악장으로 말러의 음악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선율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살아간 말러의 음악은 세기말의 불안을 안고 있으며 체념과 집착이라는 양 극단이 함께 존재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나는 오스트리아 사람 안에서는 보헤미안이고, 독일인 안에서는 오스트리아인, 세상에서는 유태인으로 어디에서나 이방인으로 환영받지 못한다"라는 말러의 말이 나타내고 있듯이 이러한 말러가 처한 상황이 음악에서도 불안과 이중성을 띤 것으로 표출되고 있다 할 것이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갈망과 죽음에 이르는 절망의 순간에 안쓰럽게 흐르는 음악, 그것은 바로 말러의 마음이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주인공을 작곡가 구스타프로 원작과 다르게 설정한 것이 바로 말러를 염두에 둔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