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의 청명함을 닮은 음악

- 음악으로 듣는 四季, 가을

by 밤과 꿈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찬바람이 불고 계곡의 야생화가 가을의 전령사를 자처하며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9월이면 가을은 이미 가까이로 와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푸른 하늘과 한낮의 햇살이 더없이 좋은 초가을의 청량함을 만끽하기에는 이 시기가 너무나도 짧기만 하다.


"국화꽃 그늘을 빌려/살다 갔구나 가을은

젖은 눈으로 며칠을 살다가/갔구나"


장석남 시인의 시 '국화꽃 그늘을 빌려'의 첫 연이 노래하는 애잔함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문득 기온이 떨어져 길에는 빛바랜 나뭇잎이 나뒹굴고 쇠락한 햇살은 겨울을 재촉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초가을의 청량함을 마음껏 호흡할 일이다. 때때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에 가까이 다가갈 일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하루에 한 번이라도 멀리 보이는 산과 이에 맞닿은 하늘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리고 산자락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는 햇살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껴보자. 또는 가로수 나뭇잎 사이사이로 반짝이며 부서지는 가을 햇살의 다정한 인사를 미소 띤 얼굴로 받아보자. 이 찬란한 계절의 얼굴을 마주하자.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서정

초가을의 부드러운 햇살을 닮은 음악으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있다. 이 협주곡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 클라리넷 연주가인 안톤 슈타틀러(Anton Stadler)의 의뢰로 작곡된 곡으로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징슈필 오페라 '요술피리'와 미완성으로 남은 '레퀴엠'과 함께 모차르트 만년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모차르트에게 있어 협주곡, 정확히 말하자면 피아노 협주곡은 교향곡과 함께 그의 기악 음악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협주곡과 실내악, 독주곡들도 피아노 협주곡이 가진 음악적 깊이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유일한 예외에 속한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이 가진 위상과 동등하며, 어떤 면에서는 다른 곡들을 능가한다.

우선 모차르트는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의 특성을 완벽하게 파악, 저음역과 고음역에 이르기까지 악기를 적절히 통제하는 능력을 잘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곡에서 모차르트는 클라리넷이라는 악기가 가진 모든 기술적 기능뿐만 아니라 가능한 감성의 표현을 이끌어내어 음악에 색채를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모차르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순수함은 놀라운 것이다. 특히 2악장 아다지오(adagio)가 지닌 아름다움은 비할 바 없는 것으로 클라리넷이 담담하게 연주하는 선율은 다양한 표정과 함께 깊은 정신성까지 전해주고 있다.

물론 음악의 순간순간 감지되는 비감한 정서는 이 곡에서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의 느린 선율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것으로 이러한 비감한 정서는 결코 과하지 않고 실루엣과 같이 얼핏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이처럼 적절하게 통제되고 있는 감정의 양면성 또한 모차르트의 음악이 가지는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모차르트의 음악은 다양한 표정을 가지게 되는 연주자에 따라 음악은 고독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반대로 음악이 가을 낮의 햇살처럼 부드럽고 기품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햇살 좋은 초가을에 이 곡을 듣다 보면 산다는 일이 이 음악과 같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에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의 선율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석양이 지는 대평원의 평화로움 속에서 카렌과 데니스가 경험하는 다정함과 평온이 우리의 삶에도 항상 같이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악곡의 구성과 추천 음반

제1악장(Allegro): 소나타 양식. 클라리넷의 특성과 매력이 잘 나타나 있다.


제2악장(Adagio): 담담하게 흐르는 선율미가 비애감을 담고 있고, 깊은 정신성이 느껴진다.

제3악장(Rondo, Allegro): 론도 형식의 악장으로 2악장의 비애감을 떨쳐내려는 듯 활기차게 곡을 마무리한다.


이 곡의 추천 음반으로는

1. 레오폴드 블라하(Cl.), 아르투르 로진스키(Cond.), 빈 국립 가극장 오케스트라 (Westminster) 오래된 녹음이지만 이 곡을 말할 때 제일 먼저 언급되는 명연주이다. 명인 블라하의 음색이 일품으로 가을의 다사로운 햇살이 느껴진다.

2. 잭 브라이머(Cl.), 토마스 비첨(Cond.),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MI-Waner Classics) 비애감이 잘 드러나는 연주와

3. 알프레드 프린츠(Cl.), 칼 뵘(Cond.),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쓸쓸한 연주

를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