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리드 감독의 1949년 영국 영화 '제3의 사나이'하면 먼저 가슴이 텅 빈듯한 여운을 남기는 엔딩 시퀀스, 그리고 함께 흐르는 안톤 카라스의 지터 연주가 인상적인 OST가 떠오른다. 그 마지막 시퀀스의 인상이 워낙 강열한 것이어서 결말이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랑과 실연의 모습 이외의 이 영화가 가진 가치와 매력이 기억에서 잊힐 정도다.
그러나 이 영화는 미국 할리우드의 자본을 투입, 스튜디오가 아닌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연합국에 의해 분할 점령된 오스트리아의수도 빈에서 야외 촬영을 주로 함으로써 1940년대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의 분위기를 전후의 피폐해진 빈이라는 유럽의 한 도시에 성공적으로 이식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후의 폐허 속에서 벌어지는 범죄 영화는 실감 나는 현실을 영화에 제공했고, 유럽 영화의 전통, 특히 프리츠 랑 감독에게로 전수되어온 독일 표현주의 영상미학이 이 영화에 공포를 더했던 것이었다.
흑백의 유려한 화면이 만들어내는 화면 속에는 피폐한 현실과 그 이면의 화려함, 어두운 범죄와 살인이라는 필름 누아르의 공식과 긴박한 추격 씬, 그리고 안타까운 사랑과 이별 등 스릴러와 멜로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갖춘 이 영화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추어 흥행에도 크게 성공,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인 캐럴 리드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폐허로 남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미국의 통속적인 소설가 홀리 마틴스(조지프 코튼 扮)는 대학 친구인 해리 라임(오손 웰스 扮)의 초청으로 오스트리아에 오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초청한 해리가 며칠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황당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헤리의 사망 사건을 수사하는 영국군 장교 캘러웨이 소령(트레버 하워드 扮)으로부터 해리가 생전에 불량 페니실린을 유통시켜 많은 희생자를 발생케 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해리의 장례식에서 만난 해리의 연인 안나(알리다 발리 扮)를 만나면서 홀리는 해리의 죽음에 무언가 석연찮은 점이 있음을 느끼고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결국 홀리는 해리가 살아있음을 밝혀내고 해리와 대면하게 된다.
해리의 범죄 사실에도 불구하고 홀리는 군정 당국의 수사에 위기에 빠진 해리를 도와주고자 한다. 그러나 아동 병원에서 해리가 공급한 불량 페니실린을 맞고 죽어가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본 해리는 마음을 바꿔 캘러웨이 소령에게 협조, 해리에게 죗값을 치르게 할 마음을 굳힌다.
캘러웨이 소령과 홀리에게 쫓기던 해리는 하수구에서 쫓고 쫓기는 긴박한 추격 끝에 총격에 의해 사망한다.
한편, 파렴치범 해리의 실종에도 그를 잊지 못하는 안나를 바라보는 홀리의 마음에 안나에 대한 사랑은 점점 자라고 있었다. 안나 또한 해리를 찾는 과정에서 홀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지만......
잠시 줄거리 중 결말에 대한 언급은 미루어 두기로 하고 이 영화의 기술적인 면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이 영화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거의 모든 비평에서 빠뜨리지 않는 것이 이 영화에서의 빛의 활용에 관한 것이다.
이 영화로 오스카 촬영상을 수상한 로버트 크래스커는 기울어진 화면의 사선 촬영, 그리고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표현주의적 기법을 이용해 쫓고 쫓기는 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스타일리시한 화면으로 표현했다.
또 한 가지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은 단 5분의 출연으로도 잊을 수 없는 악역의 캐릭터를 창조해낸 해리 역의 오손 웰스가 이 영화에서 가지는 비중과 역량이다.
사실 오손 웰스는 "영화 기법의 백과사전", "영화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시민 케인'을 직접 연기하고 감독했지만 그 영화 한 편으로 RKO 영화사를 파산시킨 전력으로 기피인물이 되어 감독으로서의 활동에 심한 제약을 받고 있었다.
비록 '제3의 사나이'에서는 짧은 출연 시간이 말해 주듯 홀리나 안나에 비해 역할의 비중이 미미할 수도 있는 구도였지만 짧은 시간에 그가 보여준 카리스마가 관객으로 하여금 해리를 잊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특히 홀리와의 재회 장면에서 범죄 사실을 추궁하는 홀리에게 변명처럼 하던 해리의 "자네도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겠지. 보르지아 집안이 이탈리아를 통치한 30년 동안 이탈리아에는 전쟁과 학살이 난무했었지. 하지만 그들은 르네상스, 즉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낳았어. 반면 스위스인들은 오백 년 동안 평화를 누렸지. 하지만 그들이 한 게 뭐 있나? 고작 뻐꾸기시계를 만들었을 뿐이야."라는 명대사도 대본에는 없던 것을 오손 웰스가 즉흥적으로 한 것이었다.
다시 결말로 돌아와서그 유명한 마지막 시퀀스를 말하기 전에 안나의 캐릭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나에게 해리는 고달픈 전쟁의 와중에 안나의 생명을 구해준 존재이다. 영화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전쟁터에서 여자가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것은 안나에게 해리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이기도 했다. 해리가 아무리 파렴치한 사람일지라도 안나가 그의 곁을 떠날 수 없는 까닭이고, 홀리의 진심을 안나가 안다고 해도 그녀가 홀리에게 마음이 다가갈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진짜 해리의 장례식이 끝나고 먼발치에서 장례식을 지켜보던 홀리는 캘러웨이 소령의 차를 타고 묘지를 떠나다 장례식 후 홀로 걸어가는 안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를 앞서 가다가 차에서 내려 안나를 기다린다.
이것이 이 영화의 유명한 엔딩 시퀀스이다. 카메라의 앵글은 낙엽 떨어진 가로수길 사이로 걸어오는 안나와 그녀를 기다리는 홀리의 모습을 롱테이크로 천천히 비추고 있다. 점점 두 사람의 거리는 가까워져 오고, 급기야 안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홀리를 스쳐 지나가고 홀리는 조용히 담배를 피워 문다. 이때 안톤 카라스의 지터 선율은 천연덕스럽게 흐르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안타까운 장면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가슴 아픈 실연의 순간에 남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으로 홀리의 모습 말고 다른 것을 과연 생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