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 비행기 타겠네."
은지화, 은박지에 파묘와 채색, 1950년대
우리의 현대 미술사에 있어서 이중섭(1916~1956) 만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사후에 전설이 된 화가도 드물 것이다. 고난의 시대를 불우하게 살다 간 역량 있는 화가가 뒤늦게라도 재조명을 받아 올바른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마땅한 일이겠지만 이중섭의 경우 그의 그림보다는 부인인 이남덕에 대한 사랑과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지극한 마음, 그리고 정신병의 발발과 때 이른 죽음 등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일반인들의 관심과 이해가 머물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이중섭은 오산학교에서 처음 미술을 접한 후 일본으로 유학, 미술의 명문으로 성가가 높았던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보다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분카학원에 다시 들어가 미술을 배웠다. 분카학원의 후배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과 서로 사랑하면서 이중섭의 엽서 그림이 이때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이남덕 부모의 반대로 우여곡절을 겪다가 이중섭이 먼저 귀국하고, 잘 알려진 것처럼 이남덕이 집을 나와 이중섭을 찾아 원산에 옴으로써 두 사람은 1945년에 결혼 후 해방을 맞이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시기에 피난지인 부산과 제주도에서 극심한 가난을 경험하고 이를 피해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혼자서 지내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작품의 주요 주제가 되었던 것이다. 혼자서 힘들게 살아가며 화업을 이어가던 이중섭은 비로소 1955년에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었지만 그림 대금을 제때에 받지 못해 생활 기반을 닦은 후 가족을 불러 함께 살고자 하는 희망이 물거품이 된 것에 절망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부터 이중섭에게 정신병의 증세가 시작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1956년에 40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표현주의 화가 조르주 루오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중섭의 그림에서 표현주의적인 요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중섭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선묘의 활용이 단순한 윤곽의 기능을 넘어 선묘의 생략과 과장을 통해 그림에 심리적인 감정을 담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이 표현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유화 작품 중 유명한 황소 그림이나 싸움닭 그림에서도 뚜렷한 선묘를 사용한 표현주의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중섭의 그림에서 주조를 이루는 선의 활용이 한국적인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활달한 선묘에서 고구려 벽화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 점을 차지하고서라도 그의 그림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 이중섭을 전설로 만든 가장 주된 소재였던 은지화에서 한국적 전통을 현대에 접목시킨 그의 예술적 성과를 발견할 수 있다.
은지화의 탄생에는 많은 설이 존재하지만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는 1953년 부산 범일동 피난 시절에 캔버스와 물감 등 화구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려진 것이라는 설이다. 빈 담뱃갑의 은박지에 날카로운 펜촉 같은 것으로 선묘를 한 후 담배 필터에 묻어 있는 니코틴, 즉 담배 진을 은박지에 바른 후 닦아내면 가볍게 음각된 선묘 그림에만 담배 진이 남게 되는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고려청자의 상감기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이중섭이 이를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적 전통의 독창적인 변용을 잘 보여주는 예술적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중섭의 사후 미망인 이남덕의 증언에 의하면 이중섭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잠시 일본에 왔을 때 다수의 은지화를 전하면서 언젠가 큰 그림으로 그릴 그림의 에스키스, 즉 밑그림이라고 말하면서 공개하지 말고 보관할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은지화는 이중섭이 이남덕에게 연서처럼 보낸 엽서 그림과 함께 1979년에 열린 '이중섭 작품전 - 미공개 200점'에서 공개, 알려지게 되었다.
작가가 은지화를 밑그림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그 가치가 결코 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중섭의 그림 가운데 가장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자전적인 그림으로 이중섭의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중섭의 은지화에는 뒤엉킨 사람 -아마도 함께 하고 싶은 가족에 대한 마음의 표현 이리라-과 함께 게와 물고기가 도상으로 많이 등장한다. 이것은 가족이 함께 했던 제주도에서의 생활에 대한 회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복숭아가 등장하는 도상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다시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에 대한 기원의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은지화에는 서명이 직접 표기된 것도 있고, 1955년의 개인전에도 전시되었던 것으로 보아 이중섭이 이를 단순하게 밑그림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1955년의 전시회에서 당시 주한 미 대사관의 문정관이었던 아서 맥타가트가 3점의 은지화를 구입,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으로 보내 심의를 거쳐 소장하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이중섭이 했던 "내 그림 비행기 타겠네."라는 말이 가난한 나라에서 재능을 맘껏 펼치지 못하는 화가의 마음이 아프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