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노을', 캔버스에 유채, 1957년
유영국(1916~2002)은 김환기와 함께 우리나라의 제1세대를 대표하는 추상화가로서 우리나라의 자연, 특히 산을 모티브로 일관되게 그렸던 화가이다.
일본 유학시절부터 진보적인 학풍의 도쿄 분카 학원에서 수학, 진보적인 경향의 미술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영국의 그림이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의 자연, 특히 산을 모티브로 하는 비구상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57년 우리나라의 현대 미술 제1세대들이 모여 결성한 '모던아트협회'에 참여하면서였다. 모던아트협회는 각자 다른 경향의 화가들이 결성하여 화단에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한 채 6번의 협회전을 개최한 후 해체되었지만 아카데미즘을 탈피하여 현대적인 감각의 미술 활동을 전개, 유영국을 비롯한 많은 참여 작가들이 우리 화단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 유학을 경험한 공통점을 가진 모던아트협회의 구성원들의 예술적 지향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술 동향을 바라보았다. 이점에서 같은 1957년에 제2세대 추상화가들에 의해 결성된 '현대미술가협회'의 앵포르멜 미술에 비해 현대성이 떨어진다는 당시의 평가가 있었지만 모던아트협회의 구성원에게는 일제강점기의 경험이 우리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강박으로 작용, 오히려 개성 있는 조형 세계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유영국을 예를 들더라도 그의 그림이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 즉 차가운 추상에서 출발하여 사물을 점, 선과 색채로 분할하고 있지만 전혀 차가운 느낌을 받지 않는다.
나는 그 차이점을 몬드리안과 유영국에 있어서 추상화의 다른 출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래 몬드리안은 스스로 '신조형주의'라고 부른 기하학적 추상을 그리기 이전에는 자연주의 회화를 그리던 화가였다. 그러다 자연이라는 오브제를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파악하여 형태를 단순화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 수평선과 수직선을 망으로 연결,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화면은 닫힌 공간으로 인식된다.
반면에 유영국은 처음부터 추상이라는 경향을 출발점으로 해서 자연의 형태를 찾아갔다는 차이점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몬드리안은 선으로 자연을 해체하고 선으로 닫힌 공간을 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몬드리안은 유에서 무를 지향하는 것으로 조형 공간을 인식했다면 유영국의 그림은 무에서 유를 화면을 구성한다. 점, 선, 면으로 화면을 분할하면서도 자연을 형상화하여 곡선을 도입하고 화면의 깊이를 더하면서 자연을 구현하는 한편, 밝고 따뜻한 색감의 원색을 사용하여 열린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유영국의 그림 '노을'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으로 도록에서는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1957년의 제1회 모던아트협회전에서 전시되었던 '노을'이라는 이름의 그림일 것으로 추측되는 작품이다.
유영국의 그림 대부분이 우리나라의 산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제목 또한 '작품'이나 '산'으로 표기되어 있어 대표작을 꼽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 그림이 유영국의 조형 세계의 출발선 상에 있는 작품이라 생각되어 이 그림을 선택해 본다.
암녹색의 바탕색을 기조로 화면을 분할하는 선과 색면이 긴장감을 구성하는 이후의 작품 경향에 비해 두터운 마티에르의 원색이 주는 강열함이 두드러진 이 그림은 검은 선으로 표현된 산등선 너머로 넘어가는 태양과 노랗게 물들어가는 하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초창기 작품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선과 색면에 의한 균형감과 긴장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유영국의 마음에 그려진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에 공감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