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총총한 별이 마음으로 오다 - 김환기

by 밤과 꿈


"나는 외롭지 않다. 별들과 함께 있기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캔버스에 유채, 1970년

수화 김환기의 뉴욕 시절에 쓴 일기에 나오는 글이다.

1963년 브라질의 '상 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한 후 바로 미국의 뉴욕에 정착, 1974년 세상을 뜰 때까지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김환기의 외로움이 잘 묻어나는 글이 되겠다.


우리나라의 추상미술 1세대인 김환기(1913~1974)는 1931년부터 1937년에 이르는 일본의 도쿄 유학시절 내내 추상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그림에서 형태를 단순화하고 지워가는 실험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해방 공간에서 당시의 모든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김환기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한국미의 구현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고, 이런 고민은 1956년에서 1959년에 이르는 파리 유학시절에도 지속되는 것이었다. 파리라는 유럽 미술의 중심지에서 김환기는 앵포르멜 미술의 영향으로 두터운 마티에르를 구사하는 등 화풍의 변화를 겪게 되지만 한국미를 추구하는 여정은 파리 유학을 마치고 서울에 머문 1960년~1963년까지 김환기에게 있어서 일관되게 창작을 이끄는 동력이었다.


김환기가 뉴욕에 머물며 그린 회화의 특징으로는 이전까지 화면에 남아있던 사물의 형태가 완전히 사라지고 점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이른바 '점화'의 형태로 조형 세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리 시절 앵포르멜 미술의 영향으로 두터워진 마티에르의 질감을 걷어내고 전통 수묵화를 연상하듯 캔버스에 물감이 스며들고 번지는 효과를 표현하게 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이 이전에 비해 확연하게 대형화되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1960년대 뉴욕 화단의 주류를 이루었던 색면추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본인이 색면추상 화가 마크 로스코를 좋아한다고 밝힌 바도 있지만 모노톤의 대형 화면을 구사했던 색면 추상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대형 캔버스의 사용 이외에도 화면의 색상을 청색으로 단일화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청색은 김환기가 이전부터 화면의 바탕색으로 주로 사용하던 것이고 한국의 가을 하늘을 연상케 하는 청색은 김환기에게 있어 한국미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지만 화면의 내용보다는 화면의 형식 구성을 강조하는 색면추상의 문법을 따른 것이라 하겠다.

다만 화면을 모노톤의 색상으로 가득 채우고 형태를 완전히 지운 색면추상 회화와는 달리 김환기의 점화가 화면을 점으로 가득 채운 것은 유럽과 미국에 머물며 그곳의 미술 동향을 받아들이면서도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본인의 독자적인 조형 세계에 대한 인식을 잊지 않았던 김환기의 자아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김환기는 추상미술이라는 서양 미술의 속에서도 한국적 정체성을 추구했었기에 그의 그림에서 사물의 형태를 지울 수는 있었겠지만 자신의 심상을 지울 수는 없었으리라. 그래서인지 김환기는 자신의 그림 속의 점에 대하여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며 찍어가는 점"이라면서 "내가 찍은 점이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고 일기에 적고 있다.

김환기의 뉴욕 시절의 그림 중 가장 잘 알려진 이 그림에서는 김환기가 고국과 친지를 그리워하는 그의 심상을 느낀다. 그리고 그가 찍은 점에서는 그의 심상을 따라 반응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역 하늘에 총총한 별들의 떨림이, 화가의 마음에 총총한 그리움에 다름 아닌 것일까.

화면에 가득한 점들의 떨림이 리듬이 되어 마음을 울린다.

하늘에 총총한 별빛이 마음으로 내려와 그리움의 음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