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1914~1965)은 살아생전에 홀대를 받았다가 죽고 난 뒤 재평가가 이루어져 크게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의 그림을 대하면 화가에 대한 지난날의 무관심과 이로 인한 화가의 빈곤이 마치 우리의 책임인 양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화가가 살았던 시대에 곤궁하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는 사람들이 유독 박수근에 대하여 마음의 빗을 크게 느끼는 것은 다른 화가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진 삶의 이력 때문일 것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성장기의 박수근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 자연의 풍경과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고, 오히려 이와 같은 화가의 체험이 미술학교에서 답습하게 되는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나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창적인 화풍을 형성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서울의 창신동에 정착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힘겨운 시절에도 박수근의 독창적인 화풍은 변화를 겪으면서 발전하게 된다.
소설가 박완서의 장편소설 '나목'의 소재가 되기도 한 박수근의 삶이 그의 가난한 그림과 함께 1965년 화가가 이 세상을 떠난 후 1970년대에 들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졌기에 화가와 그의 그림을 대하는 사람들의 감성이 남다르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수근의 그림을 구성하는 소재는 장터의 여인이나 들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낙네의 모습, (아마도 들일을 나간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을 보살피는 것이 분명한) 아기를 업은 소녀,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할아버지 등 일상 속 서민들의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배경이 그려진 경우에도 그 풍경은 그림 속 인물에 부속되어 인물의 성격을 강조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또한 그의 그림에는 유독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화가가 한국적인 정서의 표상을 여성적인 것에서 찾았다고 볼 수도 있고,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앙상하게 헐벗은 나무의 이미지와 결부한다면 당시의 고단한 시대상을 나목과 여성에게 투영시켰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림의 소재는 변함없이 서민들의 꾸밈없이 순한 일상을 그리고 있지만 박수근에게도 시대에 따라 화풍의 변화가 있어 언급해 보기로 한다.
한국전쟁 이전에 박수근은 농촌의 풍경과 농촌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인 화풍으로 그렸다고 하지만 피난 과정에서 작품이 거의 소실, 그 면모를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남아있는 맷돌질하는 여인(1940년대 후반), 나물 캐는 여인들(1940년대)과 같은 그림을 볼 때 화면의 두터운 마티에르 효과를 이때부터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박수근 회화의 특징이랄 수 있는 단순화한 화면의 구도에는 도달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50년대의 그림들도 마찬가지로 두터운 마티에르의 질박한 화면에 뚜렷한 윤곽선을 유지하면서도 점차 단순한 구도에 접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수근의 그림은 두텁고 거칠던 마티에르가 보다 부드럽게 변모하게 된다. 더불어 노란색의 색조가 많이 사용되면서 그림 속 인물의 윤곽선이 흐려지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때부터 박수근에게서 백내장의 증세가 악화된 까닭이라고 말하지만 미술 평론가 유홍준 교수가 간파한 것처럼 이때부터 박수근의 그림은 "표현의 사실성에서 의미의 상징성으로 옮겨가는 것"(유홍준 평론집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창작과 비평사)과 같은 변모를 보여준다는 것이 박수근의 화풍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수근의 그림 중에서 그의 화풍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1960년대에 화가가 도달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정서와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화일 것이다. 이들 그림에서 박수근은 명암이나 원근을 배제한 채 화강암과 같은 마티에르의 단단한 표면에 한 시대를 기록하듯 인물을 새겨 넣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에 비해 선택한 '귀로'가 화가의 대표작이라고 꼽을 수는 없을 것이다. 1960년대 작품이면서도 뚜렷한 윤곽선을 살리고 있다. 풍경화이므로 인물화와 같은 상징성보다는 사실성을 살리는 것이 보다 적합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박수근 회화의 대표성을 가지지 못한 작품인데도 이 그림을 선택한 것은 이 그림이 가지는 스토리텔링의 서정에 이끌리는 것이 있어서이다.
이 그림은 1985년에 열화당에서 출간된 최초의 박수근 화집에서는 '길'이라는 화제로 소개된 그림이다. 이후에 출간된 다른 화집에서는 '귀로'라는 화제로 소개되고 있는 데다가 열화당의 화집에서도 유사한 도상의 그림들에 '귀로'라는 화제를 붙인 것으로 봐서 '귀로'라는 화제가 보다 적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보인다. 멀리 앞서 가는 두 아낙네들은 이미 동네에 들어섰고, 들일에 따라나섰던 아이의 손을 잡은 여인은 막 동네 어귀로 들어서는 모습이다. 잠시 후 마을의 나지막한 집들의 굴뚝에서는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것이다.
하루 일을 마친 해거름에 볼 수 있는 농가의 고즈넉한 풍경을 좋아한다. 그 평화로운 모습을 좋아한다. 한 학기를 종강하고 고향으로 가는 고속버스 속에서 바라보았던, 어둠에 잠겨가는 사람의 마을과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 그리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주는 평화로운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볼 때 20대에 느꼈던 그 감동이 연상되어 나만의 선택일지언정 화가의 대표작으로 포함하고 싶다.
이와 같은 평안하고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도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됨'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누구의 글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1970년대에 나왔던 계간 미술에서 박수근에 대한 조명을 하면서 박수근을 '순심의 기록자'로 평한 것을 보았다. 아마 박수근과 그의 그림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생각하여 이글의 제목으로 이를 풀어 사용했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