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 산을 그리다 - 박고석

by 밤과 꿈


"진실은 생활 주변에 있고, 산은 내 주변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공감을 주는 진실이다"


'도봉산', 캔버스에 유채, 1980년대

우리나라 서양화가 중에서 박고석(1917~2002)만큼 산을 소재로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도 드물 것이다. 물론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으로 해서 산은 수많은 화가들의 소재가 되어 왔고, 김원과 같이 눈 쌓인 산 그림을 그려 왔던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박고석처럼 우리의 산에 대해 깊이 천착했던 화가의 예를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박고석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니혼대 미술과에 유학, 해방과 동시에 귀국하여, 서울타임스의 문화부 기자, 배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부산 범일동에 둥지를 턴 박고석은 1951년에 부산공고 미술교사로 1년 간 일하다 그만두고, 1952년'기조전 창립 동인전'을 개최, 이중섭, 한묵, 손응성, 이봉상 등과 예술적 교유를 나눈다.

당시의 그림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범일동 풍경'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에서 피난민 정착촌이었던 범일동의 모습을 어두운 색조와 두터운 마티에르, 거칠고 굵은 선으로 묘사,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를 연상케 하는 표현주의적인 조형 양식을 보이고 있다.


특히 범일동 시절의 박고석과 이중섭의 친분은 널리 알려진 것으로 부산 범일동 시절에 이중섭은 박고석의 집에서 지낸 일이 많았다. 번질나게 집을 드나들면서 어려웠던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중섭 만을 챙기는 남편 때문에 이중섭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 박고석의 아내가 이중섭의 은지화 등을 불쏘시개로 사용했다는 일화를 훗날 박고석의 아내 김순자가 전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5년부터 정릉에 정착한 박고석은 1957년에 한묵, 유영국, 이규상 등과 함께 '모던아트협회'를 결성하여 추상미술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러나 추상미술이 맞지 않았는지 활동이 뜸하다가 1967년 '구상전' 창립을 계기로 다시 구상미술로 복귀, 1968년부터 산행을 시작하면서 말년에는 아예 설악산 자락으로 거처를 옮겨 2002년 작고할 때까지 산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되는 것이다.


박고석은 자신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파기, 결코 다작 화가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표작을 꼽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단풍이 든 가을 산의 풍경을 불타는 듯 강렬한 색채와 거친 필선으로 표현한 추경을 좋아하지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도봉산의 정경을 상큼하게 표현한 그림을 선택해 본다.

강렬한 색채의 대비와 조화, 두텁게 바른 마티에르 효과와 짙은 윤곽선의 사용 등 1950년대에 정착시킨 표현주의적인 양식이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중섭과 그토록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 인간적인 면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면에서도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풍경화가 철저한 사생에 의한 그림이었기에 스케치를 위한 산행에서 위험한 상황을 겪은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한편, 박고석은 유화를 그리는 서양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판화와 조각을 병행했으며, 일본 유학 시절에 애니메이션 제작 일을 했던 경험으로 영화의 미술 감독도 했을 만큼 활동 영역이 넓었던 화가였음을 아울러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