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흔을 물방울로 승화해 보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물방울', 캔버스에 유채, 1980년대
연초에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김창열(1929~2021)의 부고가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국내외에서 화가로서의 성가가 높았던 만큼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급작스러운 일이겠지만 아흔이 넘은 그의 나이를 감안할 때 그래도 화가로서 수십 년 간 일관된 조형 세계를 구축하고 명성까지 얻었으니 행복한 일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김창열의 조형 세계가 지금과 같이 꽃 피우기까지 그의 삶과 예술적 모색이 그렇게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1948년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대학 2학년 재학 중 터진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온갖 고생을 겪고 미술과는 상관없는 경찰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이후 1961년까지 경찰관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서울예술고등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던 중 1966년 미국을 거쳐 1969년부터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국내에서 머물던 1950년대에는 추상표현주의의 그림을 그렸으나 미국의 뉴욕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팝 아트와 미니멀리즘과 같은 사실주의 계열 회화의 영향을 받고, 프랑스의 파리에서 앵포르멜 운동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부터 김창열의 그림은 모노톤으로 화면을 구성하게 된다. 특히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 전에 최초로 물방울을 형상화한 그림인 '밤에 일어난 일'을 출품함으로써 물방울 그림의 출발을 알린다.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다음과 같은 변천 과정을 겪게 되는데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에는 마와 같은 천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모노톤의 화면에 단순하게 영롱한 물방울이 맺힌 그림이 주를 이루지만 화면에 흔적을 남기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의 도상도 함께 나타난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물방울 그림에 한국적인 형상이 배경으로 나타나고 이는 한자의 인쇄본이 바탕에 등장하는 형상으로 발전, 1990년에 이르기까지 물방울 그림의 주된 도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후에는 물방울의 형상과 함께 추상적인 형상이 함께 화면을 구성하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처럼 김창열은 현대 회화의 새로운 경향을 직접 경험하고 체득하여 자신의 조형 세계를 확립해간 화가이다. 파리에서 경험한 앵포르멜 미술에서 단색조의 화면을 얻었고, 미국의 사실주의적 미술 경향에서 극사실주의적인 물방울의 형상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김창열은 우연한 기회에 물방울 그림을 착안했다고 생전에 말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 마구간을 빌려 화실로 쓰고 있었을 때 김창열은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위해 유화 물감이 잘 떨어지도록 캔버스 천에 물을 뿌리고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에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자신의 그림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김창열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을 경험한 자신으로서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전쟁의 상흔을 물방울로 승화해 보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 바도 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체험이 자신의 물방울 그림을 발전시켜 나가는 추력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작품임이 분명한 이 그림에서도 캔버스에 스미듯 글자를 지우고 있는 물기와, 반대로 캔버스 위에 영롱하게 맺히는 물방울의 대비가 지난날 한국인들이 경험한 고난과 이를 극복해내는 노력의 결정체라는 해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처럼 김창열의 그림에서 감지되는 극단의 대비가 김창열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방울이라는 물질에서 발현되는 깊은 정신성, 그리고 추상 미술이라는 서양의 방법으로 구현하는 동양적 정신, 동도서기(東道西器)의 바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김창열의 조형 세계가 서양에서도 이해되고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