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발트블루를 사랑한 화가 - 전혁림

by 밤과 꿈


"글쎄, 푸른색을 칠하모 마음이 편해지는 기라."


풍경, 캔버스에 유채, 1960년대


바다의 화가, 푸른색의 화가라 일컫는 전혁림(1916~2010)은 1916년 통영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 바다를 그리다 2010년 96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다.

통영의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한 전혁림은 정식으로 미술 수업을 받은 바 없이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여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지방 화단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48년에는 시인 김춘수, 유치환, 시조 시인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창립, 인접 예술과의 교류에 힘을 쓰기도 했다.

1953년을 필두로 해서 수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상을 수상하는 등 중앙 화단에도 이름을 알렸지만 국전 운영의 비리에 회의를 품고 1977년 고향 통영에 정착, 중앙 화단과는 거리를 두면서 재야 화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중앙일보사에서 출간했던 미술 전문지 '계간 미술"을 통해 재평가를 받고 비로소 그의 이름과 화업이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된다. 화가의 나이 65세가 되어서야 그림으로 밥벌이를 하게 되었다는 말도 이런 연유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1977년 고향 통영에 정착하면서부터 풍경의 색채추상 작업을 시작했지만 화가의 조형 세계가 만개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중앙일보사에서 마련한 전혁림 근작전에서 푸른색을 바탕으로 하고 우리의 전통 민화와 단청에서 구현된 오방색의 원색을 대비시킨 색면 구성의 추상화를 선보이게 되면서이다.

이전부터 원색의 색감을 잘 살리면서 형태를 단순화한 추상 작업을 해왔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 자연의 형태를 완전 해체한 추상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도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혁림의 조형 세계에 있어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선명한 색채의 구사에 있다. 푸른색과 오방색의 대비와 조화가 선명하되 결코 튀지 않는 것은 전혁림이 평생 구현하고자 한 통영을 품은 한려수도의 부드러운 바다와 온화한 대기의 기운을 제대로 체득한 까닭일 것이다.

전혁림의 그림이 온전한 추상화를 이루어가면서 다양한 색의 대비와 조화를 통해 화면을 유기적으로 분할하면서도 적절히 배합하는 균형감을 화면에 이루어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색채의 사용과 배치가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전혁림이 추상이라는 방법 안에서 한국미를 구체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전혁림의 그림에서 크게 인상을 받은 것은 1990년대에 보았던 한 점의 그림이었다. 화면이 온통 코발트블루가 뒤덮은 가운데 산과 항구의 형상이 가는 선으로 윤곽만 그려진 것으로 사물의 형상이 아직 남아있어도 추상 작업이 상당히 진척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도록에서도 그 그림을 찾지 못했었다.

이 그림 또한 전혁림이 추상으로서 그의 조형 세계를 확립하기 이전의 작품으로 예의 인상적인 그림과 같은 통영항의 도상을 그린 작품으로 눈길이 간다.

산과 바다와 같은 사물이 온통 푸른색으로 그려진 가운데 하늘이 노랗고 붉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그림은 해 뜰 때, 혹은 해 질 녘의 통영항의 풍경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 속 어선들의 뱃머리가 바다를 향하고 있어 이른 아침에 출어를 서두르는 항구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 확립된 전혁림의 그림처럼 밝고 선명한 색감의 추상에는 한참 이르지 못했지만 코발트블루의 주조는 여전하고 사물의 형태도 간략하게 표현된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전혁림의 마음에는 추상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