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어린 날의 순수를 갈망하다

by 밤과 꿈

영화 '시민 케인'은 오래전부터 전설이 되었다. 26살의 젊은 청년이 1941년에 만든 이 영화가 전설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영화 외적인 요소가 제작 당시부터 엄청난 스캔들을 양산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과, 영화 내적으로는 1998년에 미국영화연구소에 의해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영화"로 언급될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이 결합되어 그 영향력이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는 결과이다.

이 유명한 영화를 감독하고 스스로 주연으로 연기한 오손 웰스는 이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 라디오를 통해 이미 스타로 자리 잡고 있었던 터였다. 1938년 10월 31일 오손 웰스가 이끄는 머큐리 방송극단은 라디오극에서 실감 나게 외계인의 침공을 실제 중계하듯 방송함으로써 미국인들을 집단적인 히스테리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23살의 젊은이가 거둔 라디오에서의 성공에 주목한 RKO 영화사는 영화 제작에 대한 전권을 오손 웰스에게 부여하고 머큐리 방송극단의 멤버를 기용, 영화 '시민 케인'을 제작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대저택 제너두에서의 언론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오손 웰스 扮)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뉴스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방송국 기자 톰슨(월리엄 앨런드 扮)은 케인이 숨을 거두면서 남겼다는 "로즈버드......"라는 말에 궁금증을 가지고 이를 추적, 케인의 주변 사람들을 취재하며 케인의 일대기를 파헤쳐 가게 된다.

케인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지만 어머니가 물려받은 금광의 상속자가 된다. 그리고 케인의 부모는 케인의 성공을 위해 케인이 성장하기까지 유산을 보존하고 케인의 교육을 담당할 대리인을 지정하여 케인은 어린 나이에 가족을 떠나게 된다.

성장한 뒤 유산으로 벼락부자가 된 케인은 신문사와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고 대통령의 조카딸과 결혼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야망을 키우게 된다. 케인은 주지사에 출마하지만 자신의 혼외 외도를 약점으로 잡은 경쟁자인 부패한 정치인 게티스(레이 콜린스 扮)의 협박으로 정치의 꿈을 접게 된다. 또한 이로 인해 케인은 점차 독선에 빠지게 되어 함께 사업을 일구었던 절친한 친구 조 릴랜드(조지프 코튼 扮)와 유능한 참모 번스타인(에버렛 슬론 扮)마저 케인의 곁을 떠나게 된다.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거대한 제너두에서 쓸쓸한 만년을 보내던 케인은 가난했지만 소박하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떠나올 때의 눈 내리는 집을 닮은 스노우볼을 손에 쥔 채 홀로 숨을 거두게 된다.

톰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케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로즈버드......"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다만 영화를 끝까지 주시하면 관객 스스로가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케인의 사후에 대저택 제너두를 대대적으로 해체, 정리하는 작업이 벌어진다. 제너두의 위용이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이 순간까지도 '로즈버드'에 대한 해답은 주어지지 않지만 의외의 순간에 그 해답을 얻게 된다. 텅 빈 제너두에서 작업 인부 한 사람이 아직 꺼지지 않은 벽난로에 땔감으로 쓸 물건을 던져 넣는데, 그것은 케인이 집을 떠나올 때 눈 내린 집 앞에서 타고 있었던 썰매로 관객들은 벽난로에서 타들어가는 썰매의 본체에서 '로즈버드'라는 글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로즈버드'는 케인이 잃어버렸던, 그리고 되찾고 싶었던 어린 날의 소박하고 순수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시민 케인'은 언론 재벌 월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스캔들을 모델로 했기에 제작 당시부터 허스트의 집요한 방해와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허스트는 이 영화의 제작을 막기 위해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RKO 영화사를 인수하고자 했고, 배급과 상영을 막기 위해 자신 소유의 신문사들을 통한 비방은 물론, 할리우드 영화사들을 협박하여 이 영화의 배급과 상영을 막고자 했다.

결국 전국적 체인의 극장을 소유한 영화사들이 허스트의 압력에 굴복, 영화 '시민 케인'의 배급과 상영을 거부함으로써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하고 이 후유증으로 RKO 영화사 또한 오래지 않아 도산하게 된다.

이 일로 해서 오손 웰스는 할리우드에서 기피 인물이 되어 이후로는 영화 제작이 쉽지 않게 되었고, 오손 웰스는 영화 제작을 위해 스스로 남의 영화에 출연, 제작비를 벌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 사람의 뛰어난 재능을 하릴없이 소비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마디로 영화 '시민 케인'은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시민 케인'이 위대한 영화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영화 문법의 혁신으로 현대 영화의 도약을 가져왔다는 데에 있다. 영화와 관련된 어떤 서적에서도 '시민 케인'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 것은 이 영화가 현대 영화 문법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큼 영화 기법이 총망라되어 있는 것이다.

우선 플래시백(Flash Back)의 사용을 들 수 있는데 플래시백이란 영화 속 회상 장면으로 시점이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으로서야 흔하게 사용되는 편집법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또한 딥 포커스(Deep Focus)는 이 영화에서 거의 최초로 적용된 촬영 기법이었다. 이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까지 모두 초점이 맞도록 촬영하는 기법이다. 카메라의 초점을 가까운 곳에 맞추면 먼 곳의 초점이 흐려지고, 반대로 카메라의 초점을 먼 곳에 맞추게 되면 가까운 곳이 흐려지는 반면 딥 포커스 기법은 화면에 깊이를 더하게 된다.

그 외에도 '시민 케인'에는 크레인 쇼트(Crane Shot), 점프 컷(Jump Cut)등의 촬영 기법과 사운드 몽타주(Sound Montage)와 같은 편집 기법이 망라되어 기존의 고전 영화와는 구별되는 영화 문법을 정립했다는 점에 이 영화의 위대함이 있다.

그리고 조명을 활용한 표현주의적인 기법을 활용, 화면의 깊이에 더하여 넓은 폭을 제공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다.

촬영 기법의 획기적인 사용은 촬영 감독 그레그 톨런드의 공이 컸던 것으로 그해의 오스카 촬영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지만 이 영화는 오스카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에서 수상 후보로 올랐지만 실제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직 각본상 만을 수상했는데 '시민 케인'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의 중요한 하나가 탄탄한 스토리텔링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허먼 맨케비츠의 복잡하면서도 통일감을 잃지 않는 시나리오에 대하여 영화 평론가 폴린 카엘은 "이 영화의 진정한 천재는 신동 오손 웰스가 아니라 극작가 허먼 맨케비츠"라는 말로 그 뛰어남을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영화 '시민 케인'의 명성은 할리우드의 자금력과 오손 웰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영화사, 그리고 오손 웰스의 천재적인 감각, 뛰어난 시나리오와 그레그 톨랜드의 앞선 촬영 기법이 시너지 효과를 내어 이룩한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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