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에 갇혀버린 사랑의 고뇌

by 밤과 꿈

밤사이에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마저 강하게 분다고 합니다. 내심 눈이 함께 하길 기대했지만 아침나절에 반짝하고 예쁘게 내리다 멈추고 말았습니다. 기온의 하강과 강풍, 많은 눈이 함께 예보되어 있었기에 스비리도프(Georgy Sviridov)의 '눈보라'라는 음악을 떠올렸습니다.

정확히는 '푸시킨의 소설에 기초한 음악적 삽화, 눈보라'라는 긴 제목을 가진 9곡의 관현악 모음곡으로 1964년에 소련의 블라디미르 바소프(Vladimir Basov) 감독이 푸시킨(Alexander Pushkin)의 소설 '눈보라'의 내용을 영화로 만들면서 영화에 사용하기 위해 스비리도프에게 작곡을 의뢰한 음악입니다.


푸시킨의 소설 '눈보라'는 '벨킨의 이야기'라는 소설집에 포함되어 있는 단편소설로서 네나라도보라는 시골의 지주 가브릴라 가브릴로비치의 딸 마리야와 휴가차 고향인 가브릴로비치에 머물던 블라디미르라는 가난한 초급 장교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뛰어난 미모로 좋은 집안 청년들의 구애를 받던 마리야였지만 부모가 반대하는 가난한 청년 블라디미르에 대한 사랑뿐이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휴가를 끝내고 원대 복귀해야 할 블라디미르와 마리야는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식을 올리고 둘이 함께 고향을 떠나기로 합니다.

그러나 주례와 증인을 구하고 결혼식 장소로 가고자 했지만 블라디미르는 눈보라에 갇혀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혼식장에 늦어 결혼 장소인 교회의 문은 굳게 닫히고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세월이 흐르고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부르민 대령(젊은 날의 블라디미르)과 마리야는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이미 결혼을 언약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의 부담이 되지만 결국에는 두 사람이 예전에 결혼을 언약했던 당사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푸시킨의 존재는 "푸시킨은 예언자였다. 우리가 가는 어두운 밤길을 비추는 환한 등불이었다."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러시아 국민문학의 창시자와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어차피 번역으로서는 푸시킨의 소설이 가진 언어 감각과 정서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변죽이라고 느낄 수 있겠습니다.

스비리도프의 관현악곡집 '눈보라'의 네 번째 곡이 '로망스'입니다. 우리에게는 '올드 로망스'라는 제목으로도 친숙한 이 곡은 김연아가 자신의 안무곡으로 선택했던 음악이기도 합니다.

바이올린과 첼로, 오보에와 플룻 독주로 이어지는 애절한 주제의 연주에 이어 현악기의 하강 선율이 어지럽게 휘날리는 눈보라를 연상케 하면서도 간절한 사랑의 마음을 나타내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트럼펫의 울부짖음이 어긋난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절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격정의 순간이 지나간 후에 음악은 클라리넷의 독주로 조용히 끝나갑니다.

많은 연주가 있지만 이 음악의 초연과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Vladimir Fedoseyev)가 지휘하는 구 소련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를 뛰어넘는 것을 여지껏 듣지 못했습니다.


https://youtu.be/1HfCWPp1v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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