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는 1950년대에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가 그랬듯이 1990년대 세계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고다르 감독의 영화가 기존의 내러티브를 비롯한 관습화 된 영화 문법을 전복시키고 전혀 새로운 영화를 탄생시켰다면 타란티노 감독은 감독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에 뒤이은 영화 '펄프 픽션'에서 B급 장르 영화를 도입,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라는 이분법을 무너뜨린다. 이를 통해 타란티노 감독은 문학과 영화에 널리 퍼져 있는 추리물, SF물 등 장르물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고 그 벽을 허물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인 '펄프 픽션(Pulp Fiction)'이 곧 대중 소설, 혹은 통속 소설을 뜻하는 용어이다.
타란티노 감독은 어려서부터 추리 소설에 심취, 대중 작가가 될 꿈을 지녔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경험하고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타란티노 감독의 이와 같은 경험이 그의 영화의 자산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얼핏 보기에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텔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 무관한 듯 보이는 네 개의 에피소드가 뒤죽박죽 뒤섞여 있지만 이 에피소드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영화가 진행되면서 일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LA의 갱단 두목 마르셀리스 월리스(빙 레임스 扮)는 출장을 떠나면서 부하인 빈센트(존 트라볼타 扮)에게 자신의 아내 미아(우마 서먼 扮)를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
단순한 에피소드이지만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대사와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서 한 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특히 미아와 빈센트가 클럽에서 함께 춤추는 시퀀스는 워낙 유명해 CF 광고 등에서 많이 패러디되기도 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마르셀리스가 권투 선수 부치(브루스 윌리스 扮)에게 도박에 이기기 위해 시합에서 져 주기를 부탁하고 돈으로 매수한다. 그러나 부치는 오히려 자신에게 거금을 걸고 약속과는 달리 상대 선수를 눕힌다.(아예 죽인다) 이에 마르셀리스는 약속을 어긴 부치를 찾아 나서고, 부치는 애인인 파비안(마리아 데 메데이로스 扮)과 함께 LA를 떠나고자 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 빈센트와 쥴스(새무엘 잭슨 扮)는 보스 마르셀리스의 지시를 받고 보스의 금괴를 빼돌린 배신자들에게서 금괴 가방을 되찾아 온다. 이때 화장실에 숨어 있던 한 명으로부터 총격을 받지만 기적적으로 총격이 피해 가고 쥴스는 모두가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네 번째 에피소드는 금괴를 되찾은 쥴스와 빈센트가 식사를 위해 찾아간 식당에서 우연히 펌프킨(팀 로스킨 扮)과 허니 버니(아맨다 플러머 扮) 커플의 강도 행각에 휩쓸린다. 쥴스는 그들을 제압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신의 뜻이라면서 돈을 가지고 도망가게 한다.
이들 에피소드가 두서없이 전개되는 동안 관객이 이 영화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구사되는 대사가 지닌 힘 때문이다. 영화 속에는 장면 자체 만으로는 잔인할 수 있는 것도 웃음으로 전환케 하는 것도 이 영화가 지닌 대사의 위력이다.
LA의 갱단을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를 이처럼 대단한 영화로 만든 것은 출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한몫을 담당했지만 무엇보다도 무명시절부터 갈고닦은 타란티노의 독특한 각본과 감독으로서의 뛰어난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특한 에피소드들을 엮어가는 탄탄한 구성력이라는 타란티노 감독의 역량과 개성 있는 캐릭터의 밑바닥 인생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어울려 탄생된 영화라는 것이 어울리는 평가일 것이다. 이 영화로 1990년대의 아이콘이 된 타란티노 감독은 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과 오스카의 각본상을 수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