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이 만든 최고의 SF 영화

by 밤과 꿈

달을 향한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장정을 1년 앞둔 1968년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탄생했다.

내러티브를 가진, 사실상 최초의 영화라는 1902년 작 조르쥬 멜리어스의 영화 '달나라 여행'을 최초의 SF 영화라고 한다면 독일의 프리츠 랑 감독이 1926년에 제작한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본격적인 장르 영화로서 SF를 알린 최초의 본격 SF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사회의 발달한 기술력이 가져오는 부작용과 억압된 사회 구조라는 심각한 주제를 다룬 이 무성 영화는 오랫동안 SF 영화의 대표작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1968년 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나옴으로써 이 영화는 '메트로폴리스'가 가지고 있었던 최고의 SF 영화라는 명성을 물려받게 된다.

그리고 이후로 지금까지 무수한 SF 영화가 세상에 나왔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가진 명성은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처음부터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영국의 영화이지만 MGM 영화사의 배급망을 통해 미국에 소개되어 달 탐사선의 발사를 앞둔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따라 기대 속에 개봉, 흥행을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사에 의존하지 않는 줄거리의 진행과 모호한 결말이 이 영화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장엄하고도 고요한 영상미, 그리고 기계와 우주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등장은 센세이션을 불러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검은 거석을 둘러싼 영장류 무리

지구에 아직 인류가 등장하기 전, 한 무리의 영장류가 처음 보는 검은 빛깔의 윤이 나는 거석을 발견하고 주위에 몰려든다. 그중 무리의 우두머리임에 틀림없을 하나가 검은 돌에 접촉한 후에 짐승의 뼈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사실 이 장면은 종교와 과학이 충돌하는 내용으로 그냥 영화를 이해할 부분이지 여기서 불필요한 논쟁은 회피하자. 다만 이 정체불명의 거석의 작용이 영장류의 인지 발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볼 때, 창조론과 진화론을 절충한 학설로 한때 유행했던 창조과학과 관점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도구의 사용법을 터득하는 영장류

영장류의 우두머리에 의해 허공으로 던져진 뼈다귀는 갑자기 화면이 겹치면서 우주 공간의 장면과 디졸브 된다.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우주정거장

인류가 개척한 달 기지에서 목성을 향해 신호를 전파하는 검은 빛깔의 윤이 나는 거석이 발견되어 헤이우드 플로이드 박사(월리엄 실베스터 扮) 우주정거장으로부터 달 기지로 향해 간다. 그리고 이 거석이 인공적인 조형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달 기지에서 발견된 검은 거석

18개월 후 우주선 디스커버리 호가 우주인 데이브 보우먼(케어 덜레아 扮)과 프랭크 풀(게리 락우드 扮)과 냉동된 세 명의 예비 우주인을 태우고 목성 탐사의 대장정을 떠난다. 디스커버리 호는 인공 지능을 지닌 컴퓨터 핼 9000에 의해 제어되고 있다.

디스커버리 호를 제어하는 컴퓨터 핼 9000

그러나 별다른 말썽 없이 목성을 향한 항해를 계속하던 중 컴퓨터 핼과 지구에 있는 통제 컴퓨터 사이에 소통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핼에게 의존하고 있는 우주선의 오작동에 대한 두려움에 두 우주인은 핼이 제어할 수 없는 보조선에서 고장이 의심되는 핼의 시스템을 정지시킬 것을 논의한다. 그러나 창으로 보이는 두 우주인의 입모양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핼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우주 유영 중이던 프랭크와 연결된 생명선을 끊어 우주 저 멀리로 보내버린다. 또한 냉동되어 잠들어 있는 예비 우주인에게 공급되는 영양을 끊어버린다.

핼에 의해 우주 저멀리로 튕겨 나가는 프랭크

그리고 핼은 급히 프랭크를 구조하기 위해 우주선 바깥으로 나간 데이브의 복귀를 막으려 한다. 가까스로 우주선 안으로 복귀한 데이브는 핼의 시스템을 정지시키려 하고, 이에 핼은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소리로 "저는 두렵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핼의 시스템을 정지시키는 데이브

시스템의 부재로 방향을 잃고 표류하던 디스커버리 호는 알 수 없는 힘의 통제에 이끌리어 우주 공간을 항행한다.

그러던 중 디스커버리 호와 데이브는 우주 공간의 (지금은 웜홀이라고 부르는) 어떤 통로를 통해 빛의 속도로 빨려 들어가서는 다른 차원의 공간과 조우하게 된다.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통로

다른 차원으로의 종착점에 도달한 데이브는 안락한 침실에 와 있음을 알게 되고,

뒤이어 늙어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과 검은 빛깔의 윤이 나는 거석을 보게 된다.

침대에 누운 데이브와 거석

이를 이어 영화는 태아의 모습을 지구의 형상과 함께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늙은 데이브는 태아의 모습이 된다
많은 해석이 가능한 마지막 시퀀스

이 마지막 시퀀스는 이에 대한 이해를 도울 어떤 내용도 영화가 제공하고 있지를 않기 때문에 이 영화를 난해하게 만들고 있다. 우주를 다룬 SF 영화이지만 흔한 외계인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검은 거석의 존재가 인류에 대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장류가 거석을 만나고서 인지가 발달하여 인류의 선조로 진화한다. 그리고 달 기지에서 인류는 검은 거석을 발견하고 인조 지능을 지닌 컴퓨터 핼 9000을 탑재하고 우주로 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차원에서 검은 거석과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환원한다.

이를 두고 외계인을 형상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은 큐브릭 감독이 검은 돌기둥으로 외계인을 표현했다는 해석을 많이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생명을 가능케 하는 지혜와 창조의 원천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이해가 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는 대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나오는 대사의 대부분은 영화의 진행과는 상관없는 잡담의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의미 있는 대사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 핼의 "저능 두렵습니다"라는 대사가 주는 인상은 거의 충격적인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대사는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류와 기계에 대한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차라리 이 영화는 음악과 디자인이 영화를 주도하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음악을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특히 이 영화에서의 음악의 역할은 압도적이다.

인류의 조상이 뼈다귀에서 도구의 사용을 깨닫고 허공으로 뼈다귀를 던진 후 뼈다귀가 우주선으로 바뀌는 기막힌 디졸브 편집의 시퀀스가 있다. 이후 바로 시퀀스가 전환되면서 거석과 태양, 달이 일렬로 배열되면서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관현악곡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두가 연주된다. 이 시퀀스가 주는 전율은 잊을 수가 없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영상은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이 영화는 다른 SF 영화처럼 관객들을 긴장시키고 흥분시키는 어떤 장치도 억지로 두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지극히 평안하다. 그러면서도 우주의 고요와 장엄을 묘사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두 우주정거장의 도킹 장면에서 흐르는 요한 시트라우스의 왈츠는 얼마나 적절한 배경을 이루고 있는지. 그리고 달 기지에서 검은 거석을 발견하는 시퀀스에서 흐르는 리게티의 관현악 '분위기'는 얼마나 신비감을 고조시키는지. 리게티의 이 곡은 현대음악이지만 이 영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가구나 세트의 디자인은 지금도 세련됨을 잃지 않는다. 특히 우주선의 내부 세트는 이후에 나사에 의해 채택되어 실제 우주선에 적용되었다고 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한 우주선의 복도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에 대하여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천재성은 그가 이 영화에서 많은 것을 보여 줬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게 보여 줬다는 것에 있다."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우리의 상상력과 의문에 호소하는 몇 안 되는 영화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걸작으로 꼽는 다섯 손가락에 드는 영화이고, 이 영화를 보고 처음 느꼈던 것은 "큐브릭 감독은 진정한 거장이다." 라는 것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