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1942년 흑백 영화 '카사블랑카'는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보다 의미 있는 목적을 위해 사랑을 희생한다는 내용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고전 영화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아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배경이 현실성을 높여 지금까지도 이 영화가 지닌 매력이 변치 않고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이유 만으로 이 영화가 오랫동안 수많은 숭배자를 낳아온 컬트적인 면모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이 영화를 빛내는 가장 큰 장점은 출연 배우들의 적절한 캐스팅과 인상적인 대사가 어우러져 형성하는 캐릭터의 개성에 있다.
사실 이 영화는 험프리 보가트, 잉글리드 버그먼, 폴 헨레이드, 페터 로레, 콘라트 바이트 등 일류 배우들이 적역을 맡았다는 사실 이외에는 허점 투성이의 영화였다.
먼저 여러 이유로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못한 채 촬영을 하는 상황을 맞이하여 시나리오 작업과 촬영이 동시에 진행되는 어수선한 가운데 영화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출연 배우들이 맡은 배역이 그들이 영화를 통해 형성한 페르소나와적절하게 일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급박한 시나리오 작업 속에서도 배우들의 특성에 어긋난 캐릭터를 구상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수선한 상황의 제작 현실로 인해 화면의 디테일에 있어 섬세하지 못한 실수가 군데군데 보이기도 한다.
또한 빠듯한 제작비 때문인지 영화 제작의 전부를 스튜디오에서 제작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놀랍다는 말이 뜻하는 것은 스튜디오에서 올 로케촬영된 것에 비해서는 높은 완성도를 지닌 영화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보이는 건물 등 배경 모두가 얇은 합판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어색함이 화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도시 카사블랑카는 비행기로 중립지대인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경유, 배를 타고 미국으로 향하는 주요 망명 경로이다. 따라서 카사블랑카는 항상 나치를 피한 망명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망명자를 추적하는 나치와 범죄자까지 뒤섞인 곳이다. 그리고 미국인 릭(험프리 보가트 扮)은 이곳 카사블랑카에서 클럽 아메리캥을 경영하고 있다.
카사블랑카에 프랑스의 전설적인 레지스탕스인 빅터 라즐로(폴 헨레이드 扮)와 일자(잉글리드 버그먼 扮)가 미국으로의 망명을 위해 도착한다. 두 사람은 여권 중개인인 우가르테(페터 로레 扮)를 만나 비자를 전달받고자 했지만 우가르테는 하루 전 체포되고 만다. 망명 계획에 차질이 생긴 두 사람은 함께 릭의 클럽으로 들어간다. 일자는 그곳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샘(둘리 윌슨 扮)을 알아보고, 'As Time Goes By'를 연주해 줄 것을 부탁한다.
일자를 알아본 샘을 깜짝 놀라고, 곡의 연주를 주저한다. 그 곡은 프랑스에서 지낼 때 연인이었던 릭과 일자의 사연이 있는 노래로 릭에 의해 연주가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샘은 어쩔 수 없이 그 곡을 연주하게 되고, 일자는 샘을 보자마자 이곳에서 릭을 재회하게 될 것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 클럽으로 들어선 릭은 이 곡의 선율을 듣자마자 화가 나서 샘에게로 간다. 그러나 이내 일자와 뜻밖의 재회를 하게 되는데......
릭과 일자는 프랑스에서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다. 나치가 파리를 함락하자 나치를 피해 두 사람은 함께 탈출을 계획한다.
그러나 탈출을 위해 기차역에서 기다리던 일자는 끝내 오지 않고 릭은 일자의 변심에 대한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사실은 일자도 릭과 함께 파리를 탈출할 계획이었지만 죽은 줄 알았던 남편 라즐로의 생존 소식을 듣고 남편과 함께 하기 위해 약속 장소로 갈 수 없었던 것이다.
릭은 뒤늦게 진실을 알고 일자에 대한 배신감을 버리게 되지만 이제 일자는 남편과 함께하고 있다.
그렇지만 릭은 일자의 마음속에 아직도 자신의 자리가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우가르테에게서 미리 입수한 2장의 통행증으로 일자와 함께 이곳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일자에게서 남편 라즐로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혼자서 떠날 수 없다는 답을 듣고, 또한 라즐로에게 혼자 이곳을 떠나 자유를 찾을 것을 권유하지만 라즐로 또한 일자를 버려두고 혼자서 갈 수 없다는 뜻을 확인하게 된다.
이에 릭은 마음은 아프지만 일자의 행복을 위해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접고 그녀와 라즐로의 망명을 돕기로 결심한다.
라즐로와 일자의 망명을 위해 비행장에 도착한 세 사람, 그 뒤에는 라즐로를 체포하려는 현지 경찰이 있었지만 라즐로의 망명 시도를 눈감아 주기로 한다.
사랑하는 일자를 떠나보내면서 마지막 작별을 나누는 릭과 일자......
마침내 일자를 태운 비행기는 활주로를 벗어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 떠나보낸 릭은 쓸쓸하게 비행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릭은 혼잣말처럼 경찰서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미쳐 버린 세상에서 우리 하찮은 세 사람의 문제가 거의 가치 없는 일이라는 것은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소."라고.
우리는 이 대목에서 세상의 일에는 무관하게 도박장을 겸해 클럽을 운영하며 살아온 릭이 프랑스의 식민지이지만 나치의 영향력이 미치는 카사블랑카에서 레지스탕스의 거물 라즐로의 망명을 도움으로써 자신의 삶을 보다 높은 품격으로 이끌고 있음을 보게 된다. 비록 사랑을 잃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결점이 있지만 이 영화는 뚜렷한 캐릭터의 개성이 연출하는 낭만적인 멜로 영화로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아 2007년 미국에서 선정한 세계 최고의 영화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 아카데미 최고상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이래 지금까지 가장 사랑받는 영화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