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우리 산하의 서정을 그리다 -청전 이상범

by 밤과 꿈


강산만리(江山萬里), 종이에 수묵, 1965년


겸재와 단원이 화첩 속 중국의 풍경을 그리던 관념 산수를 지양하고 우리의 실제 풍경을 그린 진경산수를 개척하고 지향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후기의 문화 부흥기였던 영, 정조 시대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이 말은 이후의 조선 사회가 개혁의 기운을 이어가지 못하고 쇠퇴의 길을 걸었던 것과 동일하게 우리 화단에서 진경산수라는 주체적인 움직임이 동력을 잃고 그 명맥이 이어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1920년대 초에 동연사라는 모임을 통해 우리의 전통 화단(수묵화의 전통적인 그림을 서양화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동양화라 부르다가 지금은 한국화라는 개념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글 속에서는 문맥 상의 혼돈이 있을 수 있어 가급적 전통화라는 어정쩡한 개념을 그대로 사용한다.)에서는 새롭게 진경산수를 그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니 서양화의 사생 정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전통화의 원근법은 중국 북송시대의 곽희에 의해 확립된 삼원법(三遠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삼원이란 고원(高遠), 심원(深遠), 평원(平遠)을 말하는 것으로 고원이란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이를 통해 풍경의 웅장함을 얻고, 심원은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풍경의 깊이를 취할 수 있다. 또한 평원은 가까운 곳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화면의 넓이를 구현하는 원근법이다. 관념 산수화는 한 폭의 그림에서 이 세 가지 시점을 적용,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선경(仙景)을 그림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진경을 그리지 않은 대부분의 전통화가 관념적인 그림이었고, 조선시대에서는 중국의 화첩 속의 관념 산수를 그대로 모방해 그렸기 때문에 관념 산수화라는 뜻에는 실존하지 않는 이상향의 그림이라는 의미와 우리의 산하를 직접 사생하여 그리지 않은 중국의 그림을 모사했다는 의미가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것이다.

어쨌든 1920년대에 들어 서양화의 영향으로 진경 산수화가 그려졌다는 것은 서양화의 원근법이 도입, 서양화의 화접을 절충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이때 사생을 통한 진경산수인 사경산수화(寫景山水畫)를 그린 대표적인 화가로 청전(靑田) 이상범과 소정(小亭) 변관식을 손꼽을 수 있다. 청전과 소정은 성격이나 화풍이 극과 극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그림에서 진경산수의 다른 전개를 경험할 수 있다.


청전 이상범(1897~1972)은 우리의 산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야트막한 야산의 소담하고 정겨운 풍경을 소대로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대부분 가로가 긴 평이한 구도를 취하고 있어 드라마틱한 면은 없지만 활엽수가 많은(그동안 우리는 옛 그림에서 선비의 절개를 나타내는 소나무를 너무 많이 보아왔다.) 마을 뒷산의 익숙한 모습에서 우리에게 깊숙이 스며있는 서정을 발견할 수 있다. 청전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지게를 멘 촌부의 모습이나 하천에서 물고기를 낚는 어부의 모습은 얼마나 정겨운 풍경인가.

비록 청전에 일본강점기에 일본의 정책을 선전하는 그림을 그리는 등 친일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반면 청전은 동아일보의 미술담당 기자로 있으면서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정겹고 사랑스러운 우리의 풍경을 얻었으니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