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국가: 미국 러닝타임: 115분(컬러) 언 어: 한국어/영어 감 독: 이삭 정 각 본: 이삭 정 음 악: 에밀 모세리(Emile Mosseri) 출 연: 스티븐 영, 한예리, 앨런 킴, 윤여정, 노엘 조
제93회 오스카 시상식을 앞두고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미나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 이민 가정의 고단한 미국 이민 정착을 내용으로 하는 데다가 투자된 자본만 빼면 한국영화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언어와 배우 등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가 한국 일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 영화를 일컬어 "가장 미국적인 영화"라고 말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민자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에 당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다민족, 다인종 국가로서의 미국이 안고 있는 인종 갈등이 주로 부각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부정적인 면을 미국적이라고 절대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민자에 관한 영화이면서도 인종 문제와 같은 부정적인 면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는 영화 '미나리'는 조금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이 영화의 지역적 배경이 미국 남부의 아칸소라는 지역의 한적한 마을이라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지금도 5천 명 정도의 한인이 살고 있다는 아칸소 주의 시골에서 농장을 힘겹게 개척하며 살아가는 제이콥네 가족의 모습은 꿈을 안고 신대륙에 정착, 땅을 개척했던 백인 주류 사회의 서사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가 한인 이민 가정의 미국 정착의 고단함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미국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 것이다. 물론 시골이라고 해서 인종 문제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동부의 뉴욕이나 서부의 LA와 같이 인종의 용광로라는 대도시처럼 인종 간의 갈등이 일상적인 문제로 표면에 노출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도 아니다. 따라서 미국인의 시각으로 볼 때 이 영화는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서사를 떠올리게 하는 좋은 영화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이 영화는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인 가정에서 성장한 감독에 의한 영화이기에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 미나리로 대변되는, 어떤 조건에서도 꺾이지 않는 자생력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발견하는 제이콥 가족의 생명력은 외적인 부분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시골에 정착하여 농장을 개척하는 일상을 평면적으로 보여주는 차분한 영화이다.그렇지만 가족 간의 갈등이라는 플롯을 적절하게 제시, 이 영화를 따분한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가장인 제이콥(스티븐 연 扮)과 그의 아내인 모니카(한예리 扮),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앤(노엘 조 扮), 데이비드(앨런 킴 扮)가 컨테이너에 짐을 풀어 아칸소의 한적한 시골에 정착했을 때에는 이곳에서 자신의 농장을 키워가는 꿈을 가진 제이콥과 이곳과 남편의 꿈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모니카의 갈등이 이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유일한 갈등 구조였지만, 이후 초청에 의해 모니카의 어머니인 순자(윤여정 扮)가 가족에 합류하면서 손자인 데이비드(앨런 킴 扮)와 외할머니의 갈등이 더하여지면서 영화의 재미와 이민 생활의 고단함을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족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러 가족이 흩어질 상황에 도달했을 때 홀로 집에 남아있던 순자의 실화로 제이콥의 꿈이 물거품이 될 상황에서 오히려 가족 간의 갈등이 해소되고 가족 모두가 더욱 탄탄하게 결속하게 된다는 결말이 이 영화를 한국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내적인 반전을 미국 영화에서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리고 순자가 한국에서 씨앗을 가져와 키운 미나리가 가족이 처한 위기의 순간에 이를 극복하는 마중물이 된다는 설정이 가족의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화 '미나리'가 주는 감동은 극적인 무게의 깊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나 미국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라는 넓이에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 두 가지 첨언하자면 영화 '미나리'는 화면의 구성에 있어 인물을 클로즈업하는 웨스트 숏(waist shot)과 바스트 숏(bust shot)을 주로 사용, 안정적이면서 내면 묘사에 적합한 화면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속 캐릭터들의 중간에서 중심을 잡는 한예리의 절제된 연기가 인상적이어서 그녀가 오스카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