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의 거리

- 편혜영의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을 읽고

by 밤과 꿈

"편혜영은 읽는 이의 마음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드는 작가다."

소설가 편혜영이 2014년에 단편 소설 '몬순'으로 제3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문학평론가 장두영이 쓴 작품론의 첫 머리글이다. 그리고 장두영은 편혜영의 소설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결국 불안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2014년을 기준으로 이전의 경우 편혜영의 소설에서 '불안'은 "인간의 유한성에 바탕을 둔 존재론적 차원"에서 포착된다면 이후에는 "보다 일상적인 세계의 형상화"에 접근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최근에 나온 편혜영의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 속의 여덟 편의 소설도 그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양한 일상 속에서 포착되는 '불안'이 보다 다면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편혜영의 소설 속 주동 인물(protagonist)과 반동 인물(anti-agonist) 간의 갈등이 끝까지 해소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갈등 구조조차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있고, 소설 속 인물 사이의 갈등이 복합적인 양상을 띠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소설집의 타이틀이기도 한 소설 '어쩌다 스무 번'에서 장인의 간병을 목적으로 시골로 내려온 화자와 화자의 아내는 간병비 명목으로 아내의 오빠와 언니에게서 금전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돈이 부부의 생계를 감당하는 유일한 창구였기에 모멸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화자의 처갓집 식구들이 갈등을 유발하는 일차적인 반동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의 관계가 점층적인 갈등을 생성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등장인물 간의 갈등으로 소설 구조를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부부를 찾아오는 유사 종교의 전도사들이나 보안회사의 영업 사원들은 크게 갈등을 유발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에피소드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소설 속 등장인물의 갈등 구조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처한 시간적, 공간적 상황이 소설을 줄곧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호텔 창문'에서는 어린 시절 운오를 구하다 익사한 사촌 형이 반동 인물이 되겠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기에 점층적인 갈등 구조를 야기할 수는 없다. 큰어머니가 운오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운오의 책임과 도리를 기대하고 은근히 강요하고 있지만 운오는 어릴 때의 그 사건에 대한 불확실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소설은 호텔의 화재라는 사건을 통해 이를 확인해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설 '홀리데이 홈'에서는 장소령과 이진수를 부부로 설정, 갈등 구조를 형성하고 있지만 갈등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으면서 부부의 긴장은 끝까지 해소되지 않는다.

이처럼 소설집 속의 모든 소설이 소설 속 인물 간의 갈등 구조의 모호함은 그만큼 깔끔하게 해소될 수도 없으며, 소설 안에서 불안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상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일상에서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높이는 것으로 이때 우리는 불안한 자아를 경험하게 된다.

편혜영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불안'을 '거리'라는 말로 달리 표현하고 싶다. 무리 동물인 사람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사이에 거리가 있을 때 불안은 상존하는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편혜영의 소설 속 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감지하게 된다. 모호하나마 갈등은 있지만 파국으로 치닫거나 해소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평행선을 그린다.

마찬가지로 독자는 편혜영이라는 소설가에게도 적당한 '거리'를 느끼게 된다. 이는 저자가 의도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거리'나 '불안'이 현대인이 살아가는 실존적인 삶의 양태라고 한다면 소설가로서 편혜영은 자신의 소설에서 이를 웅변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소설적 구조를 약화시킬 수도 있는 편혜영의 실험이 소설로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단문과 치밀한 구도로서 긴장을 놓치지 않으면서 '불안', 혹은 '거리'를 일상으로 구현하는 편혜영의 소설가로서의 역량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