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듣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 음악으로 표현하는 신앙고백

by 밤과 꿈

오늘은 성금요일이다. 성금요일이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기리고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날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교회가 유다의 배신이 일어난 성회 수요일로부터 이틀 후, 그리고 예수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엄청난 사건을 기념하는 부활주일로부터 이틀 전 금요일로 정한 날이다.

세계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사순절, 특히 종려주일로부터 부활주일 전 일주일을 고난주간으로 정하고,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회심의 마음으로 보내게 된다.

특히 새벽기도의 전통이 뿌리내린 우리나라의 개신교계에서는 고난주간 동안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한 회심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 최대의 축일인 부활절에 비해 그 의미가 크지 않았던 성금요일에 대한 이해와 예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편 가톨릭에서는 성경 말씀에 대한 낭독과 묵상 기도로서 성금요일을 기린다. 일 년 중 유일하게 미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날(가톨릭에서는 예배에 해당하는 미사를 매일 집전한다)로서 이후에 예수의 부활로서 복음이 완성되고 삼위일체의 교리로 예수의 신성이 확립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수난곡은 예배를 위한 음악이 아니다


최근 교회에서는 성금요일 예배를 음악예배의 형태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코로나 때문에 이것도 유보된 상황이지만)

성금요일과 음악의 결합으로는 매년 성금요일에 바흐(J. S. Bach)의 마태수난곡을 연주하는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전통이 먼저 떠오른다.

이 오케스트라의 2대 지휘자로 반세기에 걸쳐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빌렘 멩겔베르크(Willem Mengelberg)가 1930년대 후반에 성금요일에 연주하는 마태수난곡을 정규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킨 이래로 지금까지 전통으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수난을 소재로 한 노래는 중세시대 이래로 수도 없이 작곡되었지만 시대 양식으로서 일정한 형식을 갖춘 수난곡(passion)이 작곡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크 시대에 들어서였다. 수난곡은 극적 스토리를 가진 오라토리오의 형태를 띤 일종의 극음악이다. 이것은 수난곡이 종교적인 내용을 지니되 예배를 위한 전례 음악, 즉 교회 음악은 아니라는 뜻이다. 음악사에 있어서 교회 음악이란 전례, 그러니까 미사와 예배에 사용할 목적으로 전례에 합당하게 작곡된 음악을 뜻한다.

예를 들면 가톨릭 미사의 통상문이나 개신교회의 칸타타와 같이 규모가 큰 음악과 루터 교회의 코랄, 성공회의 앤섬, 그리고 이를 근간으로 작곡된 찬송가 등이 교회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수난을 다룬 교회 음악이라면 수난절이라는 절기에 맞추어 작곡된 수난절 칸타타들이 있다.


수난곡은 예수의 수난을 대하는 우리의 신앙고백이다


바흐는 마태와 요한 등 두 곡의 수난곡을 온전한 형태로 남겼다.

이 말은 아직 그 악보가 발견되지 않았거나 악보의 일부분이 단편적으로 남겨진 수난곡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온전히 남겨진 두 곡의 수난곡을 살펴볼 때 마태수난곡이 보다 큰 스케일로 성서 속 예수의 수난을 장엄하게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면, 요한수난곡은 간결한 구성으로 또 다른 아름다움과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음악의 질로 보나 감동의 크기로 보나 인류가 남긴 음악 유산 중 최고봉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마태복음의 26장 1절에서 27장 66절의 내용을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을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복음사가(에반겔리스트)를 매개로 예수와 사람을 대칭적으로 배치한 삼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예수와 사람(우리)을 대칭적으로 파악하는 근거는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종교적으로 볼 때 예수의 수난은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 예정된 것이겠지만) 따라서 복음사가가 전하는 성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예수와 사람 사이의 긴장이 이 장엄한 드라마를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복음사가의 성서 낭독과 예수의 심적 발언은 모두 서창(레치타티보)의 형태로 전달되고, 성서 속에서 언급된 스토리텔링은 영창(아리아)으로 전달되고 있다. 그리고 합창단에 의한 코랄과 합창은 사람(우리)의 회심과 신앙고백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찬양이란 신앙을 표현하는 사람의 수단이기 때문에 경건한 성서의 내용이나 예수의 심상을 노래로서 표현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도 사람의 회심에 중심을 두고 있다. 따라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비롯한 수난곡의 시점은 예수의 수난을 대하는 사람의 회심과 신앙고백에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신약성서의 복음서 예수의 공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의 드라마라면 수난곡은 이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이다. 그러므로 흔히 바흐의 수난곡을 일컬어 말하는 '음악으로 쓴 성서'라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음악의 위대함은 뛰어난 해석과 연주를 잉태한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지닌 음악적 가치와 위대함은 당연하게 뛰어난 연주를 양산하게 된다.

19세기 낭만주의의 전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지휘자 빌렘 멩겔베르크의 비탄에 가득 찬 1939년의 연주로부터 현대의 원전 연주가 들려주는 담백한 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차를 보여주는 연주와 음반이 있다. 그중에서도 거장의 편모가 두드러졌던 지난 세기의 대표적인 연주 음반 3종을 소개한다.


첫째로는 독일의 지휘자 칼 리히터(Karl Richter)가 지휘하는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1958년에 남긴 연주를 들 수 있다. 이 연주의 해석은 마태수난곡을 한 편의 장엄한 드라마로 파악하고 선이 굵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극음악이라는 마태수난곡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연주로서 무엇보다도 이 연주를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음반으로 들을 수 있는 한 최고의 복음사가로 평가되는 테너 에르네스트 헤플리거(Ernst Haefliger)가 들려주는 확신에 찬 복음사가의 모습은 일품이다.


두 번째는 토스카니니, 푸르트벵글러, 발터와 함께 4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지난 세기의 대지휘자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가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이끌고 들려주는 넉넉한 모습의 마태수난곡이다. 합창단의 뛰어난 기량이 돋보이는 연주로 한마디로 보편적으로 가질 수 있는 강건한 신앙을 느끼게 하는 연주다. 이 음반을 들으며 느끼는 감동은 아마도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신앙고백이 담담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로는 구 동독의 종교 음악 전문 지휘자인 마우에르스베르거(Mauersberger) 형제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교회 합창단, 드레스덴 성십자가 합창단을 지휘하여 남긴 마태수난곡을 들 수 있다.

라이프치히는 바흐가 마지막으로 머문 도시이며, 이 도시의 성 토마스교회의 칸토르(음악감독)로 머물면서 마태수난곡을 작곡했다. 뿐만 아니라 작곡가 멘델스존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있을 때인 1725년에 마태수난곡의 악보를 발견,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교회 합창단을 이끌고 초연했기에 이 음반에는 그 전통에 자부심이 녹아있다. 앞선 두 연주처럼 스케일이 크지는 않지만 기도하듯 맑고 소박한 심성이 가득한 연주다.


칼 리히터, 오토 클렘페러, 마우에르스베르거의 lp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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