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밀러 감독의 영화 러브 스토리(Love Story) OST 중에서 눈 장난(Snow Floric)
겨울이다. 그리고 겨울은 눈 소식과 함께 시작된다. 눈 볼 일 없는 곳에서 태어나고 성장기를 보내다 1980년대 초반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 1학년을 마친 겨울에 큰 눈을 만났다. 몇몇 학우들과 독서 모임을 가진 후 하얗게 변한 캠퍼스에서 함께 눈싸움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학우들에겐 눈이 해마다 수차례 만나게 되는 흔한 것이었겠지만 나로서는 그날의 경험이 보통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학우들과 그냥 헤어지기 아쉬웠다. 보아하니 다들 술 한 잔 생각은 가득했지만 나를 포함, 아무도 여윳돈이 없는 듯 서로 눈치만 볼뿐이었다.
무턱대고 내가 알고 있었던 학교 인근의 '작품 80'이라는 카페로 학우들을 끌고 갔다. 그리고 그날 내가 가지고 있었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노래한 슈베르트의 3대 연가곡집 LP판을 맡기고 맥주를 마셨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작고 어두운 카페에서 눈 내리는 날 벽난로의 온기와 좋은 음악과 함께 한 시간을 잊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젊음이 주는 객기가 발동한 일이지만 그 LP판이 있었기에 그날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2년 후에서야 그 음반을 되찾을 수 있었는데 뒤늦은 방문에도 "덕분에 좋은 음악을 손님들과 들을 수 있었다"라고 고마워하는 사장님의 말에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었다.
그 음반은 이후 고전음악 감상 동아리방에 비치하여 선후배들과 공유했으니 원래 역마살이 낀 음반이었는지 끝내 내 것이 되지는 못했다.
이 일은 눈과 관련한 자그마한 추억 한 조각으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눈 내리는 날이면 문득 그날의 추억이 떠올라 혼자 미소를 지으며 옛 생각에 잠겨 본다.
순수한, 1970년대식 사랑
또 하나, 눈 하면 생각나는 것으로 '러브 스토리'라는 미국 영화가 있다. 에릭 시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서 힐러 감독의 영화 '러브 스토리'는 상류층 출신의 하버드대 학생 올리버 배럿(라이언 오닐 扮)과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집안의 딸로 레드클리프 여자대학교에서 첼로를 전공하는 제니(알리 맥그로우 扮)의 사랑을 스토리로 한 영화이다. 그리고 이들 사랑하는 남녀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고 제니가 백혈병으로 죽는다는 안타깝고 애절한, 그러나 빤한 스토리의 멜로드라마이지만, 197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음악상을 수상한 프란시스 레이의 아름다운 테마 음악이 사람들의 심경을 울렸다.
그리고 애절한 선율의 테마 음악과 함께 인기 있는 사운드 트랙으로 '눈 장난'은 한동안 눈 오는 날이면 반드시 듣게 되는 음악이었다. 경쾌한 리듬과 스캣 송이 인상적인 이 곡으로 해서 영화 속의 눈 장난 장면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을 것이다.
'러브 스토리'라는 영화가 개봉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에는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과 함께 영화 속 명대사의 힘도 컸다. 그중에서도 올리버를 향한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Love means never to say you are sorry)"
이라는 제니의 대사는 너무도 유명한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곤 했다.
그 외 이 영화의 성공에는 1960년대에 미국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젊은 세대의 저항 문화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올리버의 아버지로 대변되는 보수적 가치와 기존 사회의 틀을 깨고 결혼을 감행한 올리버의 진보적 사고와 행동이 영화 속의 갈등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주제라는 것이다.
올리버와 제니의 결혼으로 올리버는 이와 같은 갈등 구조를 해소하고자 했지만 제니의 죽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950년대와 60년대의 황금시대를 거치면서 미국 사회에 팽배해진 물질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이 영화의 애절한 스토리와 맞물리고, 이에 뛰어난 음악과 명대사가 가미되어 상승효과를 가져온 것이 이 영화의 성공 비결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낡고 식상한 영화이겠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서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감동을 주지 못할 수도 있는 70년대식 사랑의 문법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