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의 일이다. 평소에 가까운 후배가 불쑥 자신의 실직을 알려왔을 때, 그것도 화기애애하게 서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훅하고 던지는 말 한마디에 약간은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보다 나은 계획이 있어서 회사문을 호기롭게 박차고 나온 것도 아니고, 다니던 회사가 공중으로 분해되면서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된 경우로 나와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그 순간에도 후배의 마음에는 찬바람이 휑하고 지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참 난감한 것이 그 순간에 후배를 위해 해 줄 말이나 행동이 마땅찮다는 것이다. 그 어떤 말도 후배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함께 술잔을 비워가면서 후배의 마음을 쓸고 지나가는 찬바람을 같이 느낄 뿐 후배에게 달리 해줄 것이 없었다.
대학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고향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고향 친구의 급작스런 방문에 집 인근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면서 친구로부터 오늘 자신에게 제적 통지서가 날아왔다는 사실을 직접 들었을 때의 난감함도 그랬었다. 별다른 말없이 술만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셨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고 와서는 친구를 집에 재우는 것. 그리고 친구의 집에 전화해서 친구가 같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음 날 그 친구는 집으로 돌아갔고 일 년 후 다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직했던 후배와의 만남도 여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나는 어떤 이유로든지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곁에 있어준다는 것 이상의 위로가 없다고 생각한다.
선율에 흐르는 슈베르트의 마음이 위로가 되다
이와 같이 살아가면서 어떤 이유에서든지 위로를 필요로 할 때 사람을 대신해 위로를 주는 음악이 있다. 음악 예술에 있는 비 형상과 추상적인 특성으로 해서 대부분의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위무하는 성격이 강하지만 특히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인 B 플랫 장조의 21번 소나타는 순정한 선율이 마치 위로를 필요로 하는 아픈 마음을 같이 아파하면서 위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음악이다.
이 21번의 피아노 소나타는 교향곡 9번, C장조의 현악오중주와 함께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1828년에 작곡된 가장 후기작에 속하는 곡이다.
그리고 매독균이 온몸에 퍼져 죽어가는 슈베르트가 이 세상에 던지는 회한과 못다 피운 음악에 대한 마지막 열정이 절절하게 녹아있는 곡이다. 곡의 군데군데에 슈베르트의 눈물이 서정적인 악상이 되어 맺혀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 곡을 들을 때 슈베르트의 아픔이 위로를 필요로 하는 우리의 아픔을 감싸고 어루만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슈베르트의 21번 피아노 소나타는 나 자신이 때때로 위로받고 싶을 때 자주 듣는 곡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일청을 권하고 싶은 곡이다.
슈베르트의 21번 피아노 소나타는 지나치게 긴 연주 시간으로 해서 오랫동안 균형감이 결여된 곡으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새로운 시각으로 이 곡을 바라보는 평가가 나와 비로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슈베르트는 본질적으로 선율이 풍부한 작곡가로 인식하고 그의 작품을 평가해야지 베토벤의 소나타와 같이 고전적인 균형과 논리적인 악상 전개의 기준으로 슈베르트의 음악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악곡의 구성과 추천 음반
제1악장(Molto Moderato): 한 편의 가곡을 연상시키는 선율이 인상적인 악장으로 테너를 연상시키는 낮은 성부와 소프라노를 연상시키는 높은 성부가 교차, 마치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2악장(Andante Sostenuto): 여유로운 오른손의 선율이 왼손의 넓은 옥타브 진행 속에서 표정을 더한다.
제3악장(Scherzo, Allegro vivace con delicatezza): 베토벤이 스케르초 악장을 많이 사용한 것처럼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슈베르트 특유의 정감이 잘 나타나 있다.
제4악장(Allegro, ma non troppo): 경쾌한 악장으로 춤곡으로 진행하다 갑자기 곡이 종결, 인상적인 특징을 가진 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