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각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와 같은 가족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감독의 영화 '가을 소나타'는되새기게 한다.
물론 가족은 혈연으로 연결된 가장 기본적인 삶 공동체로서 결코 부정되거나 훼손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혈연 공동체라는 견고한 인연으로 해서 가족이란 그 구성원에게는 굴레가 되기도 하고, 또는 가족이라는 사실로 의식 없이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갈등 요소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대충 봉합하고 만다. 어떤 경우에도 가족이라는 견고한 유대는 변함이 없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기에 한 사람의 성격 형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가족 간의 갈등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가족 내에서 갈등 요소를 가지고 있고 이에 따른 상처가 있어 타인의 사정에 대하여 무심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을 생각하면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가족이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구성단위이기 때문이다.
1978년에 제작된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 '가을 소나타'는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의 시골에서 목사인 남편 빅토르(할바르 비요르크 扮)와 장애를 지닌 동생 헬레나(레나 니만 扮)와 함께 생활하는 에바(리브 울만 扮)는 남편 레오나르도와 사별한 어머니 샬롯(잉그리드 버그만 扮)을 초대한다.
7년 만에 이루어진 모녀의 만남은 처음에는 화기애애했지만, 점차 에바에게서는 유명 피아니스트로서 항상 바빴던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성장기의 상처가 되살아나게 된다.
그 시작은 에바의 쇼팽 전주곡 연주에 대한 샬롯의 형식적인 칭찬이지만 4살에 익사한 아들 에릭(샬롯에게는 손자가 되겠다.)에 대한 기억이 발단이 되었다. 에릭이 죽었을 때에도 공연으로 바빴던 샬롯은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샬롯에게는 심한 장애를 가진 작은 딸 헬레나가 2년째 에바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어색한 상황이다. 바쁜 연주 여행 때문에 가족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샬롯은 헬레나가 아직 요양원에 있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마주하게 되는 마음속의 상처는 딸 에바가 발작처럼 내뱉는 폭로 속에서 샅샅이 드러나고, 어머니에 대한 딸의 트라우마와 마찬가지로 어머니 또한 가족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 트라우마가 되어 나타난다.
에바는 자신을 두고 "엄마가 시간이 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 인형"이었다며 어쩌다 집에서 시간을 같이 할 때 보여주었던 어머니의 다정한 모습을 위선으로 치부하면서 심지어 "딸의 불행은 엄마에게는 행복이요, 딸의 슬픔은 엄마의 기쁨"이라고까지 말한다.
이에 샬롯은 에바에게 어릴 때 잘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지만 결국 관계는 회복되지 못한 채 딸의 집을 떠나고, 에바는 다시는 어머니를 보지 못하리라 예감한다.
딸에게서 떠나가는 기차 속에서 샬롯은 매니저에게 "언제나 고향에 가고 싶었어. 그러나 집에 가면 내가 원한 것이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에바는 어머니에게 심했던 자신의 말과 행동을 후회하고 "다시는 제 삶에서 엄마를 지우지 않겠어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낸다.
이 마지막 신은 결국 가족이라는 관계는 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듯하다. 그렇다고 돌이킬 수 없는 모녀간 감정의 골이 개선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가족이라는 것이 성벽과 같이 견고한 관계이면서도 다치기 쉬운 바늘과 같이 날카로운 관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 이 영화를 떠올려 보았다.
젊어서 연극 연출을 했던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연극에서 선보였던 실내극 스타일을 영화에 적용, 최소의 인원을 등장시켜 집중도 높은 심리극을 탄생시켰다. 베리만 감독의 페르소나 리브 울만과 암 투병 중에 이 영화에 출연, 리브 울만과 뛰어난 앙상블 연기를 선보인 과거의 명배우 잉글리드 버그만(이 영화가 그녀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의 열연 외에도 유명 촬영 감독 스벤 닉비스트(Sven Nykvist)의 유려하고도 집중력 있는 영상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