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 도심의 밤 풍경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잠시 전까지 도시의 거리를 뜨겁게 데우던 수많은 인파도 일순 썰물처럼 사라지고, 어둠을 밝히고 있는 네온사인의 차가움이 쓸쓸함을 더하고 있다. 막차에 몸을 싣고 차창으로 바라보는 거리의 쓸쓸한 모습에 원인모를 슬픔마저 느끼게 된다.
조금 전까지는 거리에서 사람들과 섞여 도심을 뜨겁게 밝히던 열기의 일부였던 우리, 거리의 인파 속에 섞여, 한 무리 군중이 되어 오늘의 생(生)에 대하여 안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익어가는 삼겹살 한 점을 씹어가며 오늘을 안심하고, 소주 한 잔을 삼키며 내일도 오늘처럼 안심하는 하루가 될 것을 믿고 싶어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안심을 믿으며 도심을 떠나가는 늦은 밤, 아무리 먹고 마셔도 뚜렷해지는 정신으로 우리는 깨닫는다. 언제나 이 도시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게다가 겨울이다. 도심에서는 추위에 밤의 공허가 더하다. 추위에 떨며 도심을 떠나는 우리, 이제는 다시 안심하는가. 차창 밖의 검은 공허가 토해내는 칼바람에도 비로소 두 손의 온기를 느끼며 안심하는가.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가 '지하철역에서'이라는 시에서 노래했듯이 생(生)은 우리에게서 평안하다.
군중 속에서 환영처럼 피어나는 얼굴들
검게 젖은 나뭇가지 위 꽃잎들
도시에서의 생활은 우리를 고독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 우리가 속한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연을 거스르거나 앞서 나가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양태가 경쟁이라는 사회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후기 산업사회의 물화와 대상화라는 개념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현대사회, 특히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자아는 고독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런 우리의 자화상을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과 조지 시걸(George Segal)의 조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표정한 인간 군상에서 서로가 소외되고 배경으로부터도 소외되는 고독한 자아를.
그리고 바리톤 색소포니스트 게리 멀리건이 피아노를 연주한 'Night Lights'라는 재즈곡에도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고독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 곡에 표현된 고독감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나 조지 시걸의 조각처럼 차갑지 않고 음악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것이어서 듣는 마음이 편안하다. 아마도 음악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1963년에 나온 이 곡이 수록된 LP의 재킷 디자인이 뉴욕 맨해튼의 야경을 그린 것으로 이 곡의 악상과 너무나도 잘 어울려 재킷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