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Die Winterreise)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은 사랑이 되었다."
슈베르트가 쓴 글이다. 영국의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가 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Schubert's Winter Journey, 장호연 역 바다출판사)'라는 책에서 처음 알게 된 글로서 슈베르트라는 인간과 그의 음악을 적확하게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1828년, 31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가 1년 전에 남긴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사랑을 잃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심리 상태를 줄거리로 한다. 이는 앞서 작곡된 연가곡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의 치기 어린 방랑이 아니라 "지금 세상은 캄캄하고, 길은 눈으로 덮여 있네"라는 막 길을 나서는 나그네의 인식에서 알 수 있듯이 가곡집 겨울 나그네는 아무런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음울하고 자학으로 가득한 방랑의 노래이다.
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평소에는 잘 듣지 않는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대표하는 이 연가곡이 지닌 음울하고도 고통스러운 악상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 연가곡을 처음 들은 슈베르트의 친구들이 보인 반응 또한 그 어두운 분위기에 부정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 음악의 중심이요, 슈베르트 이해의 시금석으로 마냥 피해 갈 수만은 없는 곡이다.
음악으로 쓴 슈베르트의 유서
슈베르트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통념처럼 알려진 오해가 있다. 우선 음악가가 되기 위해 슈베르트가 교사가 되기를 강권하는 아버지와 연을 끊으면서까지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는 이야기. 슈베르트가 활동했던 낭만주의 시대의 초기에는 음악 소비의 중심이 귀족으로부터 신흥 자본가에게로 이동, 귀족들의 궁정악단의 해체로 교사라는 직업이 음악가에게는 가장 안정적인 생계 수단이었다는 사실에서 교사가 된다고 해서 음악가의 길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슈베르트가 교사직을 거부한 진정한 이유는 오직 음악만 하면서 살아가겠다는 자신의 이상 때문이었다.
둘째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긴 후 무명의 음악가로서 고정 수입이 없었던 슈베르트가 가난에 시달렸다는 이야기. 사실은 당시 빈이라는 도시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은 대중적으로 꽤 인기가 있었던 편으로 슈베르트의 수입도 나쁜 편이 아니었다. 다만 결혼과 같은 안정적인 생활에 별로 뜻이 없었던 슈베르트의 낭비벽, 즉 친구들과 함께 한 방탕한 생활의 결과 때문에 항상 넉넉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슈베르트가 겨울 나그네를 작곡할 당시에도 방탕의 대가로 얻게 된 질병인 매독이 심각하게 진전, 슈베르트는 자신에게 엄습해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직감하고 있을 때였다. 따라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어둡고 체념이 지배하는 악상은 당시 슈베르트가 겪고 있었던 현실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이 슈베르트에게 주는 강박이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은 사랑이 되었다"라는 슈베르트의 글에 표현되고 있는 것 같다.
슈베르트에게 있어서 사랑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자 자신의 이상이었다. 사랑, 곧 음악에 대한 갈망이 강할수록 죽음의 공포는 고통으로 다가왔고,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체념할수록 음악에 대한 열정은 되살아났을 것이다.
그렇게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듣다 보면 운명의 굴레에 갇혀버린 슈베르트의 안타까운 영혼의 노래가 들린다. 그리고 그 노래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모노톤의 방이 있을 뿐 사방 어디에도 배경이 없다. 오직 슈베르트가 남긴 체념과 자학의 어두운 노래만이 허허롭게 남아 있다.
악곡의 구성과 추천 음반
제1곡(밤 인사): 실연한 젊은이가 한밤 중에 연인을 떠나 방황의 길을 떠난다.
"나그네로 이곳에 왔다가 나그네로 이곳을 떠나네. 덧없이 봄은 숱한 꽃다발을 내게 바치며 호의를 베풀어 주었지. 그녀와 사랑을 약속했지만...... 떠나는 길에 그녀에게 밤 인사를 전하리라. 내가 얼마나 너를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도록......"
제2곡(풍향기): 바람에 흔들리는 풍향기가 젊은이의 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사랑하는 그녀의 집 지붕의 풍향기가 내 마음을 희롱한다. 쓰라린 마음으로 도망치듯 길을 떠나는 나를 비웃고 있구나......"
제3곡(얼어붙은 눈물): 피아노의 스타카토는 얼어붙은 눈물을, 노래는 젊은이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묘사한다.
"얼어붙은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흐르네. 내가 울고 있었던가? 내 눈물이 이토록 미지근했던가, 사랑으로 용솟음쳤을 때는 그토록 뜨거웠건만......"
제4곡(동결):
"나는 덧없이 눈 속을 헤매려 한다네.그녀의 흔적을 찾아...... 눈 속에서 흔적이 드러나게 내 눈물로 눈과 얼음을 녹이려네."
제5곡(보리수): 고뇌에 찬 여정 중에도 잠시 그녀에 대한 회상에 잠긴다.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제6곡(홍수): 피아노의 음형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젊은이의 발걸음을, 노래는 연인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묘사한다.
"눈물이 홍수가 되어 눈 덮인 길 위에 떨어지고, 차가운 눈송이는 뜨겁게 솟아오르는 내 슬픔을 삼키네......"
제7곡(시냇물 위에서):얼어붙은 시냇물 위에 젊은이는 연인의 이름을 새긴다.
"...... 얼어 버린 시냇물 위에 새기련다, 그리운 이름과 그리운 그때를......"
제8곡(회고):
"차가운 눈과 얼음 위를 걷고 있지만 내 발바닥은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아.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추억이 되살아나면 내 마음은 옛날로 향하고, 다시 한번 그녀의 집을 그리네......"
제9곡(도깨비불):
"바위 틈새 깊숙이로 도깨비불이 나를 유혹하네...... 지난날의 내 기쁨도 슬픔도 모두 도깨비 불의 장난에 지나지 않지......"
제10곡(휴식):
"방랑에 지친 나그네인 나는 잠시 쉬어야겠다네. 그토록 저돌적이던 내 마음도 지금 편안한 휴식에 잠기면 오히려 뜨거운 열병에 사로잡히는구나."
제11곡(봄날의 꿈): 잠시 달콤했던 옛사랑을 회상해 보지만 이내 엄연한 현실로 돌아온다.
"나는 꿈꾸었다네. 5월에 핀 환한 꽃들을,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는 푸른 들판을. 그러나 나는 닭 울음소리에 꿈에서 깨어나고, 주위는 아직 춥고 어둡다......"
제12곡(고독): 실연한 젊은이에게는 밝은 세상이 오히려 고통이 되고 차라리 거칠고 음울한 바람이 편하다.
"...... 밝고 행복한 세상을 지나 누구 한 사람도 나를 반기는 이가 없어. 더없이 밝고 행복한 세상이여, 태풍이 몰아칠 때도 내 마음이 이토록 비참하지는 않았다."
제13곡(우편마차):
"멀리서 들리는 우편마차의 나팔 소리, 내 마음이 설렌다. 정처 없는 나그네에게 편지가 올 리가 만무하지만, 왜 이다지도 마음이 설레는가. 그래, 우편마차는 그녀가 사는 곳으로부터 왔다. 내 마음아, 그곳의 사정이 궁금하니?"
제14곡(백발):
"서리가 내려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네, 나는 기뻤지만 서리는 이내 녹아 흑발로 돌아왔지. 이 젊음이 나를 괴롭힌다. 아직 무덤까지는 멀기만 하고......"
제15곡(까마귀): 까마귀의 을씨년스러운 움직임은 젊은이의 불길한 운명을 나타내는 듯하다.
"방랑길을 시종 따라오는 까마귀 한 마리가 내 머리 위를 맴돌고 있다네. 까마귀여, 나를 네 먹이로 삼고 싶은가? 지친 방랑도 오래가지 못하리니, 내 마지막 날에 너를 보게 해 다오."
제16곡(마지막 희망):
"다 떨어지고 남아 물든 나무 잎새. 나는 희망을 걸고 잎 하나를 바라본다네. 바람이 찾아와 그 잎이 떨어지면 내 희망도 따라 사라지리라......"
제17곡(마을에서):
"사람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고, 잠 이룰 줄 모르는 개들아, 짖어 나를 내쫓으라! 이 시간에 나를 잠 못 이루게 하라. 모든 꿈을 다 꾸어본 내가 잠든 사람들 틈에서 무슨 볼 일이 있을까."
제18곡(폭풍의 아침): 폭풍이 휘몰아치는 아침의 풍경은 젊은이의 반항을 묘사한다.
"폭풍이 하늘의 휘장을 거칠게 찢는 모습을 보라!...... 내 마음은 하늘에 나타난 스스로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차갑고 거친 겨울의 모습일 뿐이다."
제19곡(환상):
"친숙한 빛 하나가 나를 현혹한다네. 비참한 처지의 나그네는 그 환상에 순응하지. 추운 밤과 공포 저편에 따뜻한 집이, 거기 사랑하는 그녀가 살고 있다. 거짓된 환상은 내 유일한 벗!"
제20곡(이정표): 걸음걸이를 연상케 하는 리듬이 어둡고 무거운 나그네의 발길을 연상케 한다.
"어째서 나는 다른 나그네들이 가는 길을 피해 눈 덮인 바위 산의 오솔길을 가는가?...... 길을 가는 내 앞에 이정표가 있다. 내가 가야 할 길, 누구 하나 돌아오지 못한 그 길."
제21곡(숙소): 숙소는 공동묘지를 뜻한다.
"길을 따라 무덤으로 이끌려 왔다. 여기서 안식을 생각했지만 내가 몸을 누일 빈자리가 없어 다시 길을 떠나야지......"
제22곡(용기!): 장조와 단조가 교차, 젊은이의 불안한 심정을 묘사한다.
"눈이 얼굴을 때리면, 나는 눈을 쓸어 내겠다...... 기꺼이 이 세상에 뛰어들어, 온갖 비바람에 맞서리라! 이 땅 위에 신이 없다면 우리 자신이 신이 되어야지."
제23곡(환상의 태양):
"나는 세 개의 태양을 보았다. 그 태양들은 꼼짝 않고 그 자리에 머문 채, 나에게서 떠나고 싶지 않은 듯. 너희들은 나의 태양이 아니다...... 차라리 어둠이 내게는 더 편하지."
제24곡(거리의 악사): 늙은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손풍금은 체념을 노래하듯 음울하고 단조롭게 연주된다. 젊은이는 여정의 막바지에서 늙은 거리의 악사에 동화, 허무와 지친 동경에 공감하게 된다.
"마을 저편에 손풍금을 연주하는 악사가 있다. 운 손으로 열심히 손풍금을 돌리지만 그의 작은 접시는 비어 있고, 그의 연주에 귀 기울이는 사람 하나 없다. 오직 개 한 마리가 짖어 대고 있을 뿐...... 노인이여, 저와 함께 여행을 떠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