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냉소, 그러나 이름다운 시선

- 재출간된 박상수 시인의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를 읽고

by 밤과 꿈

2000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한 박상수 시인은 6년 후 첫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에서부터 줄곧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감수성으로 평단과 독자의 호평을 이어온 시인이다.

그러나 시인의 첫 시집인 '후르츠 캔디 버스'가 절판되어 미처 이 시집을 읽지 못해 아쉬웠던 차에 출판사를 바꾸어 문학동네 포에지 시리즈로 재출간하게 되었다.

2006년에 처음 출간된 박상수 시인의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가 그 이후에 출간된 '숙녀의 기분'(2013년)이나 '오늘 같이 있어'(2018년) 등의 시집과 비교할 때 가장 뚜렷한 차이는 '시적 화자(詩的 話者)'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시인의 첫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에 비해 이후의 시집 '숙녀의 기분'과 '오늘 같이 있어'는 명확하게 여성의 시각으로 여성의 서사를 다루고 있다. 박상수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많은 여성 독자들은 시인의 시가 자신들의 일상과 심리를 전혀 심각하지 않게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부감 없이 이끌리고, 이처럼 여성의 심리를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시를 쓴 사람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고 한다.

사실 오랫동안 박상수 시인의 시에 큰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먼저 나 자신이 시에 대하여 구식의 감각을 지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연결해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참신함으로 다가오게 하는 시인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지울 수 없는 생경함은 시인의 시가 여성의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서사라는 사실에 그 진정성을 폄훼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평소에 소설이 허구로 구성하는 객관이라면 시는 진심으로 구성하는 주관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박상수 시인의 시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조동범 시인이 쓴 박상수 시인에 대한 작가론 '아름답고 슬픈 당신의 목소리'(시현실 2019년 봄호에 수록)를 읽고 작년 연말에 재출간된 박상수 시인의 첫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를 읽게 되었다.

조동범 시인은 박상수의 시에 대하여 "발랄하고 아름다운, 그러나 우울하고 슬픈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출발"한다고 언급하면서 "언뜻 발랄하게 보이는 시인의 화법은 사실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냉소이자 조롱"이라고 박상수 시인의 시를 조명하고 있다.


누가 데려왔을까 여긴 제비꽃 말라죽은 자리 그 옆엔 오래된 낙서와 버려진 신발들, 햇빛은 사방에 가득하네 처음 온 골목이란 골치가 아파 두고 온 알약을 떠올려보지만 부유하여 햇빛 속을 떠돌 뿐, 시든 잎에 바람이 드네 고개를 돌리면 철대문이 열리고 누군가 버리고 간 아이의 울음소리 그치지 않네 흔들리는 눈썹, 살갗은 말라가네 언젠가는 버려진 것으로 이 골목도 가득 차겠지만 시간을 잊으며 영영 떠돌아 창백해진, 나는 이상한 떨림으로 말라가고 있었네 영혼을 부르는, 오래전 죽음을 잊고 있던. ('붉은 저녁에 둘러싸인 골목' 전문)


하나의 예이지만 이 시를 볼 때 박상수 시인의 시에 대한 조동범 시인의 언급을 이해할 수 있다. 시적 화자에게 골목은 "제비꽃 말라죽은 자리", "버리고 간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한 곳이다. 심각할 것 없이 경쾌한 시상의 전개가 우울하고 슬픈 세계를 품고 있다. 이와 같은 역설이 부조리한 현실을 양식화한다고 볼 수 있다.

산문시의 형태로 쓰인 시인의 시들은 문장부호조차 최대한 생략한 채 질주하는 시선의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의 시에서는 어떤 사유나 관념이 스며들 여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시의 화자가 바라보는 시선과 이를 인식하는 의식의 흐름이 경쾌한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박상수 시인의 시에서는 시적 화자의 존재가 특히 중요하며, 부조리한 현실을 묘사하는 데 있어 시적 화자를 반드시 시인의 자아와 일치시킬 이유는 없을 것이다. 또한 내가 시인의 시를 가깝게 하지 않았던 이유인 여성 화자에 의한 여성 서사가 첫 시집인 '후르츠 캔디 버스' 이후 정착된 것도 부조리한 현실의 피해자로서 여성을 설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숙녀의 기분'에 비해 더 어린 시절의 풍경을 담고 있는 '후르츠 캔디 버스'에서는 "한참을 빨아야 흘러나왔던 수돗물에 입술을 적실 땐 갑작스러운 코피처럼 내내 떠나지 않았던 녹비린내,"('비밀' 부분), 그리고 "치마 주머니에서 간밤에 먹다 넣어두었는지 눅눅해진 센베 쪼가리를 주었다"('적란운 피어오르는 계절' 부분)와 같이 내 어린 날을 떠올리게 하는 서정이 있어 좋았다.

5~6년 단위로 시집을 내놓고 있는 시인의 시가 스스로의 자아보다는 시적 화자를 빌려 주제를 표현하는 만큼 각 시집마다 주제가 명확하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시집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시인의 탐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시인의 현실에 대한 냉소적이지만 상큼 발랄한 언어를 충분히 탐닉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