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을 드러내는 냉소적인 시(詩)

- 최영미 시인의 신작 시집 '공항철도'를 읽고

by 밤과 꿈

지난 5월 말 최영미 시인은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인 '공항철도'를 출간했다. 등단 30주년을 기념해 시인이 설립한 이미출판사에서 출간한 두 번째 시집인 이 시집은 시인의 등단 30주년을 기념한 시집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집 '공항철도'를 출간하면서 온라인으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시집의 시에 대하여 "다시 서른으로 돌아가 쓴 시"라고 언급했다.

시인의 이 발언으로 시인의 첫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시인이 구사했던 대담한 언어의 선택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1994년에 나온 시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독자에게 선사했던 도발적인 느낌과 참신함은 1981년에 나온 최승자 시인의 시집 '이 시대의 사랑'에서 느꼈던 감흥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새로 나온 시집에서 젊은 날 시인의 흔적을 더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시인 스스로도 "다시 서른으로 돌아가 쓴 시"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시집에서도 시인의 섬세한 자의식이 빚어내는 섬세하면서도 날 선 시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적을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


이 문장을 이해하는 자

이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


누구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5분 안에 웃길 수 있다


나의 본질을 꿰뚫은 어떤 개그맨에게

이 시를 바친다

- '최영미' 전문



시인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이 시도 그렇지만



"모르는 사람과 악수하지 않고/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너무 표시내고('원죄'의 부분)"



과 같은 문장에서 시인의 날 선 자의식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이 탓일까, 이번 시집에서는 세상에 지친 시인의 모습도 간혹 발견된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발은 느려지고

피부는 까칠해지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눈은 희미해지고


하늘은 낮아지고

지구는 점점 따뜻해지고

더러운 땅에 안주하며

아주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불평장이가 되었다

- '육십 세' 전문



같은 시나



사랑과 분노가 있어야 큰일을 한다


이제 분노할 힘도 없다

분노할 열정이 있다면 연애를 하든가,

맛있는 거 찾아 먹겠다

- '낙서' 전문



와 같은 시에서 지쳐 힘이 빠진 것 같은 시인의 모습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들 시를 다시

볼 때 세상에 대하여 보다 냉소적이 된 시인의 모습 또한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반어의 방법으로서 냉소적인 표현으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벼리고 있는 것이다. 비로소 "다시 서른으로 돌아가 쓴 시"라는 시인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시인이 겪었고, 시인이 제기했던 문학계 내 '미 투'의 잔영을 떠올리게 된다. 이 일로 문단에서 곤란한 입장이 될 수도 있었던 시인은 이에 저항하며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새로운 시집을 출간하는 한편,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왔던 기 출간 시집 또한 다시 출간했다. 시인이 운영하는 이미출판사에서 나온 첫 신작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 수록된 풍자시 '괴물'로 인해 시인은 고은 시인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받은 바가 있었다. (물론 이 소송은 원고인 고은 시인의 패소로 판결이 내려졌다.) 시인은 이때의 심경을 다음과 같은 시로 남겼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진실을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 '최후진술' 전문



시집 '공항철도'에 수록된 49편의 시 중에서 30여 편의 시가 올봄 코로나 시국 아래 창작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시집에는 코로나에 관련한 시와 부동산 문제에 대한 시도 수록되어 있고, 페미니즘과 연관된 시도 눈에 띈다. 이러한 시인의 시에 대하여 시집에 추천사를 쓴 문학평론가 고종석은 "이 시집의 화자는 자본주의에 패배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상처를 드러내고, 페미니즘에 물장구치면서 페미니즘을 선양한다. 최영미는 자신이 정치시인인 줄 모르는 정치시인이다."라고 언급한다.

이 말에 오해가 없기를. 인간을 일컬어 정치적 동물이라고 한다. 이에 앞서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른 표현일 것이다. 물론 정치라는 용어에 유독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정치적'이라는 말을 '순수함'이라는 말과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가 "나는 비정치적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자체가 정치적 행위가 되는 줄을 모른다.

세상과 사물에 대하여 안테나를 가동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시인이라면 세상사에 대하여 외면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환갑의 나이에 들어선 시인이 서른 살 초심을 바라면서 써 내려간 자기 고백이 생경하지 않은 것도 현실을 고민하는 시인의 성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