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추한, 그러나 순수한 사랑

- 음악으로 듣는 生의 풍경, 사랑

by 밤과 꿈

푸치니(Giacomo Puccini)의 4막 오페라, 라 보엠(La Boheme)



돌이켜보면 젊은 날의 모든 것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누추하고 어설픔만이 가득한 젊은 날의 기억일지라도 그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이 우리의 일생에서 가장 순수한 시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의 희망과 소중한 사랑의 기억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 겪었던 좌절과 슬픔, 그리고 분노마저도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는 것은 젊은 날의 모든 행동과 감정이 순수함을 매개로 해서 일어났던 까닭이다. 비록 젊은 날의 기억이 찬란하지 못하고 물기를 머금어 눅눅해진 것일지라도 후회할 것은 없다. 다만, 그 시간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클 따름이다.


사람이란 것이 나이를 먹어 갈수록 지나간 시간 속의 기억들을 들추어 마음으로 반추하는 시간이 늘어간다. 사람은 청년일 때 현재를 살고, 중년일 때 미래를 살다가 장년에 이르러 과거를 돌아본다고 했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딱 그렇다. 아마도 내가 늙어가는 것일 게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나타나는 이런 마음의 노화 현상을 내 편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을 조금 오래 살아 아름다움이 사라진 삶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움으로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지금도 정기적인 만남을 유지하는 대학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있다. 이 만남이 가지는 의미는 우리가 젊었을 때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의 만남이라는 데에 있다. 따라서 만날 때마다 조금이라도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만남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런 대화는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하루 종일 넘치도록 했을 일 이야기를 나누기에 바쁘다. 그리고 이제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걱정이 늘어간다. 물론 중요한 화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걱정 많고 건조한 일상 속에서도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삶의 여유를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항상 있다.

모임의 멤버 중 한 친구는 모두 알고 지냈던 여학생과 결혼해서 자식을 넷이나 낳고 잘 살고 있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모임의 모두가 불면의 밤을 지새워했던 사랑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랑을 이루지 못한 실연의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날의 아픈 상처도 지금은 아픔보다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것은 그 아픔마저도 순수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훈훈한 오페라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은 가난하지만 순수한 젊은 날의 사랑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여주인공의 죽음이라는 슬픈 결말의 이야기이다.

12월의 크리스마스이브, 프랑스 파리의 누추한 다락방에서 싹튼 시인 로돌포와 청순한 처녀 미미의 사랑. 우연한 첫 만남, 로돌포가 미미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부르는 아리아가 그 유명한 테너 아리아 '그대의 찬 손'이다.

나는 시를 쓴답니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부자, 시와 노래의 아름다운 낙원에서 살아가지요. 그러나 당신의 아름다운 두 눈동자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답니다.


이에 미미가 화답하여 부르는 아리아가 바로 '내 이름은 미미'라는 유명한 아리아다.

저는 자수를 놓으며 살아가지요. 백합과 장미를 수놓으며. 혼자 사는 꼭대기 작은 방에서는 보이는 것은 지붕뿐이지만 지붕 위의 눈을 녹이며 빛나는 봄의 첫 햇살은 제가 처음 받지요. 봄의 첫 햇살은 바로 나의 것! 그러나 제가 수놓는 꽃에는 항기가 없지요.


가난하지만 순수한 두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대화다.

그러나 가난으로 병이 깊어진 미미는 자신이 로돌포에게 부담이 될까 봐 로돌포에게 이별을 고하고 4막에서는 죽어가는 미미를 안고 오열하는 로돌포의 모습을 끝으로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가슴 아픈 줄거리와 아름다운 아리아가 감동적인 이 오페라는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많이 무대에 올라 훈훈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고 푸치니의 오페라 중에서도 라 보엠의 인기가 가장 높은 것에는 곡의 높은 완성도가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지금은 잊힌, 그러나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함 직한 순수한 사랑의 추억도 작용했으리라 믿는다.


추천 음반

이 곡의 추천 음반으로는

1.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Sop.), 유시 비올링(Ten.), RCA 빅터 오케스트라 (EMI-Warner Classics) 소박하지만 시정 넘치는 연주,

2. 레나타 테발디(Sop.), 카를로 베르곤치(Ten.), 툴리오 세라핀(Cond.),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 (DECCA) 정통 이탈리아 오페라 연주,

3. 미칼라 프레니(Sop.), 루치아노 파바로티(Ten.),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Cond.),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ECCA) 뛰어난 연출력이 돋보이는 연주를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