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Johannes Brahms)의 독일 진혼곡(Ein Deutsches Requiem)
아침저녁으로 떨어졌던 기온이 한낮에도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옷깃을 자꾸 여미게 한다. 청명한 가을 한낮을 밝히던 햇살도 기력을 다한 듯 빛을 잃어가고, 생명 활동을 잠시 멈춘 채 깊은 잠을 청하게 될 나무들도 물기 없이 바싹 마른 잎을 아낌없이 털어내고 있다. 바야흐로 계절은 겨울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생도 이와 같아서 삶이란 결국 죽음을 향해 떠나는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생각이 내세를 인정하지 않고 현세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삶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내세에 대한 뚜렷한 자기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는 죽음도 삶의 과정일 뿐인 것으로서 결코 피할 수는 없지만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된다.
불교에서는 윤회라는 개념으로 내세를 설명한다. 윤회사상은 생명의 탄생에는 반드시 그 소멸이 따른다는 인과론이며, 無에서 와서 有로 머물다 다시 無로 돌아간다는 순환적인 인식의 체계이다. 나아가서 현세의 삶을 苦로 파악, 자신과 타인, 사물과의 관계가 업(Karma)을 쌓게 되어 윤회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것이 윤회사상이다. 그리고 고뇌에 찬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업장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인식으로 이
에 의하면 윤회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죽음이란 전생의 업을 다하고 현생의 고뇌를 멈추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한편 기독교에서는 구원과 영생이라는 개념으로 내세를 설명한다. 기독교의 사상은 원죄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죄를 대속받고 구원에 이른다는 결정론이다. 물론 신학적으로 구원과 영생이 반드시 육체적인 죽음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판과 구원, 부활이라는 기독교의 사생관이 기독교 신앙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불교나 기독교의 종교 발생의 문화적 차이와 내세 및 사생관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분명 있지만 둘 다 종교로서 현세의 죽음 너머로 내세를 보여줌으로써 죽음을 극복하게 한다. 이것이 유한한 생명을 가진 우리에게 종교가 지닌 의미이며 가치이다.
레퀴엠 미사, 독일 진혼곡
레퀴엠, 혹은 레퀴엠 미사는 음악적으로는 가톨릭 전례에 사용되는 것으로 진혼곡, 진혼 미사란 이름으로 번역된다. 장례를 위한 음악인만큼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고 안식으로 이끄는 전례 의식에 사용되는 음악이다.
우리의 장례 음악인 진도 상여소리가 애끓는 노래 가락으로 망자와 남은 사람들이 함께 교감하는 슬픔과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일체감을 구현하고 있다면 서양 음악의 레퀴엠은 죽은 자와 신과의 대면을 내용으로 하는 결정론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브람스의 독일 진혼곡은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라는 가톨릭 전례에서 탈피, 공식적인 가톨릭 전례에 사용되는 라틴어 대신에 독일어를 사용했다.
브람스 자신이 개신교도로서 이 곡을 가톨릭 전례에 따라 작곡할 뜻이 없기도 했지만 미사의 통상문으로 사용되는 일정한 틀의 가사를 버리고 성경 속 산상 수훈의 "애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와 "죽은 자는 복이 있나니"를 중심 텍스트로 선택하여 죽은 사람에 대한 추도의 뜻과 남은 사람에 대한 위로의 뜻을 함께 이 곡에 담아내고자 했다. 작곡의 동기가 명확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스승 슈만의 죽음이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이 곡을 듣는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안기는 가사와 선율은 오히려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곡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리고 이 곡은 브람스의 음악 중에서도 가장 높은 정신성을 구현한 곡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악곡 구성과 추천 음반
성경의 구절을 텍스트로 사용한 독일 진혼곡은 7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곡(합창):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제2곡(합창):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
제3곡(바리톤 독창, 합창): 나의 종말과 연한을 알게 하사
제4곡(합창):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제5곡(소프라노 독창, 합창):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제6곡(바리톤 독창, 합창): 우리가 영구히 머물 도성은 없고
제7곡(합창):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한편, 안심하고 추천할 수 있는 대표 음반으로는
1. 오토 클렘페러(Cond.),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Sop.),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Br.),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EMI-Waner Classics)
2.루돌프 켐페(Cond.), 엘리자베스 그륌머(Sop.),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Br.),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MI-Waner Class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