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현악사중주곡 제13번 B 플랫 장조 중 5악장, 카바티나(Cavatina)
살다 보면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에 자신을 아무런 대책 없이 노출시켜야 할 때가 있다. 누군가, 가족 중 한 사람의 급작스런 부재를 경험하게 될 때가 이런 경우이겠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누군가 떠나갈 때 남아있는 사람이나 떠나가는 사람 모두가 마음을 추스르고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사고에 의해 아무 준비도 없이 가족의 부재를 현실로 맞이해야 할 때, 예상치 못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슬픔에 앞서 실감되지 않는 당혹감을 먼저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뒤 이어 한 여름철의 장대비처럼 마음속으로 거칠게 내려 출렁이는 크나큰 슬픔의 홍수에 무방비로 휩쓸릴 밖에는 어쩔 방도가 없다. 게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이 해결했어야 할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있다면 남은 가족에게는 슬픔에 곤란이 더해져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이십여 년 전에 형님 한 분을 그렇게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당시 형님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는데 그것이 스트레스였는지 지방 출장 중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중증의 뇌출혈로 이틀 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나와는 세 살 터울로 특히 가까웠던 사이인지라 더욱 슬픔이 컸고, 그 슬픔에서 한동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때 장례식장을 정하고 장례 준비를 위해 잠시 집에 들러 슬픈 마음으로 들었던 음악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3번이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곡, 내면의 독백
베토벤에게 있어서 현악사중주라는 장르는 그가 작곡한 9곡의 교향곡, 32곡의 피아노 소나타와 함께 모든 작품들의 중심이 되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그가 작곡한 16곡의 현악사중주곡 중에서도 12번에서부터 16번에 이르는 후기 현악사중주곡들은 베토벤의 육체적 질병이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베토벤이 깊은 비탄에 잠겨 있을 때, 베토벤이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집중적으로 작곡한 곡들로 내성적인 깊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악곡 구성을 시도하거나 여러 음악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로 보아 베토벤은 16곡의 마지막 현악사중주곡들에서 자신의 음악가로서의 삶을 결산하고자 하는 의도를 역력하게 들어내고 있다 할 것이다.
이 후기 현악사중주곡들을 작곡할 당시에 베토벤이 기록한 글에는 "나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었다. 따라서 나는 오직 내면의 소리 만을 듣고 있다"라고 적혀 있어 당시 베토벤의 심경이 어떠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현악사중주곡 13번은 특히 베토벤이 심혈을 기울여 작곡, 오랜 시간을 쏟아부었을 뿐만 아니라 현악사중주의 일반적인 구성인 4악장 형식을 벗어나 6악장 구성을 보여 주고 있는 등 곡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긴 '대 푸가'가 딸린 7악장의 구성으로 이루어졌지만 주위의 의견을 반영, 이를 별도의 곡으로 독립시켜 그나마 6악장의 구성으로 완결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곡에서는 5악장에 사용된 '카바티나'의 사색적인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베토벤과 가까웠던 홀츠는 훗날 베토벤이 이 카바티나 악장을 쓰면서 눈물을 흘리는 베토벤의 모습을 회상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미국의 우주 탐사선 보이저 호가 무한한 우주여행을 위해 지구를 떠날 때 금속 음반에 기록한 지구에 대한 자료로 이 카바티나 악장을 수록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지구에서 외계로 보내는 이 음반의 수록 목록 선정에 관여한 페리스가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곡을 일컬어 "폴리네시아의 아름다운 섬"으로, 그중에서도 13번의 카바티나 악장을 "섬의 고요한 호수"라고 표현한 것도 이 곡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 것이다.
악곡의 구성과 추천 음반
제1악장(Adagio ma non troppo- Allegro): 느린 서주로 시작하여, 서주의 주제가 알레그로 부분에서 중심적인 모티브로 재현된다.
제2악장(Presto, Scherzo):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스케르초 악장으로 처음 제시되는 주제가 반복되는 순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제3악장(Andante con moto ma non troppo):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악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치밀한 주제의 사용과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다.
제4악장(Alla danza tedesca, Allegro Assai): 왈츠풍의 독일 무곡을 주제로 사용한 활달한 악장.
제5악장(Cavatina, Adagio molto espressivo): 가장 유명한 카바티나 악장으로 가요풍의 친숙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일품이다.
제6악장(Finale, Presto): 소나타 양식의 악장으로 민속적인 무곡풍의 주제는 반복되면서 론도의 형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모든 현악사중주단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의 연주와 해석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는 만큼 뛰어난 연주가 많고 앞으로도 뛰어난 연주가 음반으로 계속 나올 것이다. 따라서 이들 연주를 비교하여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러나 13번의 연주에 있어 독일의 부시 현악사중주단의 연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부시 현악사중주단은 1930년대 독일을 대표하는 현악사중주단으로 음반으로 남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 연주가 녹음의 낡음을 떠나 항상 최고의 연주로 평가받아왔지만 특히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직후인 1941년에 남긴 13번의 연주는 고국을 떠난 단원들의 향수까지 더해 절절한 감각이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