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완성하는 정염의 사랑

- 음악으로 듣는 生의 풍경, 사랑

by 밤과 꿈

바그너(Richard Wagner)의 2막 악극(Music Drama),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 그 뜨겁고 흔들림 없는 사랑이 이 시대에도 계속 유효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문학 작품의 소재로서 자주 등장할 만큼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볼 법한 것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중세 독일의 궁정 시인 슈트라스부르크가 켈트의 전설을 기초로 해서 쓴 서사시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바로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사랑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들이다.

이렇게 죽음에 이르는 지독한 사랑이 문학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는 그만큼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죽자 사자 하다가도 싸늘하게 돌아서는 것이 우리네 사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러기에 이들 문학 작품들이 지금까지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있을 것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이유도 예나 지금이나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힘든 사랑의 유형이기 때문이다.

다만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는 그 원형이 전설이었던 만큼 단순하고 투박한 것이었는데 바그너는 다소 투박한 이야기였던 것을 지극히 드라마틱하고 세련된 드라마로 바꾸어 놓았다.


1980년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남산에 있는 독일문화원에서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영상음악 감상회가 있었다. 음악가이기도 한 문화원장의 해설로 진행된 이 날의 감상 모임은 적지 않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음악

바그너가 창안한 악극(Music Drama)과 기존의 오페라가 구별되는 차이점은 무한 선율과 유도동기(라이트 모티브, Leitmotif)의 도입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연극에도 이해가 남달랐던 바그너는 기존의 오페라가 음악적인 요소에 의해 연극적인 요소가 위축되고 있는 것을 개선, 음악과 극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종합 예술로서 악극을 제시하고, 무한 선율과 유도동기를 수단으로 음악과 극의 일치를 구현하게 되었다.

2시간 30분이 넘는 길이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바그너의 음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 없이 보고 듣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오랜 시간 끊임없이 지속되는 무한 선율에 귀를 맡긴다는 것이 간단한 일일 수는 없다. 실제 외국에서는 1막이 끝난 뒤 식사를 제공, 저녁 식사를 마친 후 2막을 이어서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문화원에서의 그날에도 1막이 끝난 뒤 문화원에서 커피와 쿠키를 준비, 간단한 요기를 한 뒤 계속 영상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라 보엠'과는 다른, 사랑의 전형

아일랜드의 이졸데는 적국 콘월의 마르케 왕과의 정략결혼을 위해 배를 타고 콘월로 향한다.

그리고 마르케 왕의 조카 트리스탄이 이졸데의 항해를 수행 기사로 동행한다.


원수지간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항해 중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마르케 왕과의 원치 않는 결혼에 비관한 이졸데는 죽음을 결심하고 독약을 트리스탄과 나누어 마시지만 그들이 마신 것은 사실 사랑의 묘약. 그들의 사랑이 불타오른다.


두 사람의 사랑이 알려지고 격분한 기사 멜로트의 칼에 트리스탄이 중상을 입는다.

이루어져서는 안 될 사랑의 괴로움에 트리스탄은 치료를 거부하고 이졸데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트리스탄과 함께 죽을 생각인 이졸데는 생명이 꺼져가는 자신을 깨닫고 '사랑의 죽음(Liebestud)'으로 알려진 이졸데의 유명한 아리아 "부드럽고 조용하게 미소 짓고"를 격정적으로 부른 후 트리스탄의 시체 위에 쓰러져 편안하게 숨을 거둔다.

너무도 부드럽고 조용하게 그가 미소를 짓네요.
여러분들에게는 보이지 않나요?
그의 가슴이 얼마나 당당하게 부풀어 오르는지.
힘차게 뛰는 심장의 고동 소리.
그의 입술에서는 부드럽고 달콤한 숨결이 불어오네요.
여러분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나요?
놀랍고 감미로운 선율,
더없는 탄식 속에 모든 것이 드러나고
그에게서 조용히 뉘우치는 소리가 나죠.
더 분명하게 들리고 저를 감싸서는
상쾌한 산들바람이 되네요.
들어마실까요? 그 안에 뛰어들까요?
그 향기에 취해 숨을 거두게
출렁이는 물결 속에
울려 퍼지는 소리 속에
거대한 세상의 숨결 속에
빠지고 가라앉고 정신을 잃으면
너무나 행복할 거예요.


간략한 줄거리로 바그너의 창작인 이 악극의 아름다운 언어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특히 이졸데의 아리아 '사랑의 죽음'이 들려주는 감정의 고양과 사랑의 언어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이 노래에 대하여 사랑을 노래한 노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말한 어느 성악가의 말이 이해가 된다.

푸치니의 '라 보엠'이 지고지순한 사랑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정염으로 불타는 사랑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추천 음반

이 곡의 추천 음반으로는

1. 비르기트 닐손(Sop.), 볼프강 빈트가센(Ten.), 칼 뵘(Cond.), 바이로이트 축제 교향악단 (DG)

2. 키르스텐 플라그슈타트(Sop.), 루트비히 주트하우스(Ten.), 빌헬름 푸르트벵글러(Cond.),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EMI-Waner Classics)

의 두 가지가 오래전부터 최고의 연주로 평가받아 왔다. 그리고 녹음된 지가 벌써 40여 년이 지났지만 비교적 새 녹음이랄 수 있는 음반으로는

3. 마가렛 프라이스(Sop.), 르네 콜로(Ten.), 카를로스 클라이버(Cond.), 드레스덴 스타츠카펠레 (DG)의 연주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