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교향곡 제3번 E 플랫 장조, 영웅(Eroica)
인간사 새옹지마(人間事 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굴곡이 많아 앞날을 짐작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우리의 경험이 이 말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인생이 고해라는 엄청난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고난과 희망이 간단없이 교차하면서 반복되는 우리 삶의 풍경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어차피 맞이할 내리막길이 계속 준비되어 있다면 우리의 삶이 절망하거나 무기력에 빠져 계속 허우적거릴 법도 하건만 내리막의 끝에서 오르막이 시작된다는 단순하지만 확고한 믿음에 기대어 또다시 희망을 가져 본다.
이처럼 우리로 하여금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삶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는 강인한 의지가 추력으로 작용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언제나 우리에게는 반등이라는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닥친 어떤 고난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믿음을 잊지 않는다. 나아가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의 지경에서도 비참에 빠지지 않고 남다른 의지로 이를 극복해내는 인간 승리의 예를 간혹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는 베토벤에게서 삶의 조건을 넘어 불굴의 의지로 완성하는 인간 승리의 전형을 찾을 수 있다.
작곡가로서의 개성이 나타난 최초의 교향곡
우리가 흔히 베토벤을 일컬어 악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음악가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청력 상실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 음악사에서 큰 획을 그을 명곡들을 남긴 인간 승리와 불굴의 예술혼을 베토벤에게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베토벤은 자신의 청력이 치유가 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절망에 빠져 1802년 빈 교외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동생들에게 절망적인 유서를 쓰게 된다. 무엇이 베토벤에게서 심경의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유서는 동생들에게 부쳐지지 않았고, 당연히 베토벤의 자살 기도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베토벤이 교향곡 3번 '영웅'을 작곡한 것이 유서가 작성된 때로부터 일 년 후인 1803년이었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영웅'을 작곡하면서부터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 같은 선배 작곡가들의 음악 작법에서 완전히 탈피, 자신의 음악 어법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사실은 베토벤이 심적으로 가장 위축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어떤 계기로 인해 자신에게 닥친 역경을 극복하고 음악가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된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회심의 계기에 대하여 하일리겐슈타트의 뛰어난 자연 풍광이 베토벤에게서 삶의 의지를 되살렸을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어왔는데 당시 하일리겐슈타트의 숲길을 산책하는 것을 즐긴 베토벤의 일상으로 보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음악 애호가이기도 한 시인 김정환은 베토벤의 교향곡에 대하여 "지상의 인간 영혼 속에서 진행되는 슬픔과 기쁨의 변증법"(내 영혼의 음악, 청년사)으로 언급한 바 있는데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고전주의 음악의 소나타 양식 자체가 변증법적인 악상 진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클래식 음악의 초심자 시절에 워낙 자주 듣었던 음악인지라 오히려 손이 가지 않는 음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만에 다시 들을 때 항상 새롭게 들리는 음악이 3번 교향곡 '영웅'이다.
악곡 구성과 추천 음반
제1악장(Allegro con Brio): 힘이 넘치는 악장으로 뒤 이은 첼로 파트의 주제 선율이 인상적이다.
제2악장(Marcia Funebre, Adagio Assai): 잘 알려진 장송 행진곡이 포함된 악장. 느리고 장중하게 연주되는 장송 행진곡도 좋지만 뒤 이은 푸가의 웅장함은 실로 감동적이다.
제3악장(Scherzo Vivace, Allegro)
제4악장(Finale, Allegro Molto): 강렬한 총주로 종곡에 어울리는 큰 스케일로 정신의 승리를 구가한다.
워낙 많은 음반이 시중에 나와 있고, 지휘자마다 베토벤의 교향곡에 쏟는 노력과 해석이 남다른 만큼 대표적인 연주를 꼽기도 난감한 일이다. 그러나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세 종류의 모노 음반을 필청반으로 추천한다.
1. 에리히 클라이버(Cond.),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DECCA)
2. 오토 클렘페러(Cond.),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EMI-Waner Classics)구판
3. 빌헬름 푸르트벵글러(Cond.),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MI-Waner Classics)
푸르트벵글러에게는 이 정규 녹음반 이외에도 우라니아라는 레이블에서 녹음한 실황 연주 음반이 있어 푸르트벵글러라는 지휘자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난 연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참고로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