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닐 때 읽었던 책 중에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가 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책이 있었다. 1976년 백낙청 교수의 번역으로 제4권을 시작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4권의 책으로 문학과 예술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였다. 1953년에 나온 이 책은 랑케(Ropold von Ranke)의 실증사학에의한 문화사 기술에 벗어나 사회사적 접근 방법을 취한 선구적인 책으로 오래된 만큼 시대에 뒤떨어진 면이 없지는 않지만 아직도 이 방면의 권위를 잃지 않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각 시대별로, 분야별로 보다 깊이 있는 독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에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는 이 책이 기술하는 중세 예술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 정신과 사회상에 아쉬움이 있었다.
시간이 지난 뒤 이와 같은 지적 갈등을 매워 주었던 책이 바로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쓴 '중세의 가을'이었다.처음 구입했던 판본은 1988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책으로 오랫동안 유일한 번역서로서 널리 보급되어 있지만 컴퓨터 조판이 아닌 활판 조판으로 인쇄된 책이라 불편함이 많았다. 이에 새로 구입한 책이 연암서가에서 2012년에 나온 판본이다. 두 책의 번역을 비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보다 편한 조판으로 만들어진 책이 우리를 사유의 공간으로 수월하게 이끌게 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중세라는 미지의 시대에 관한 책이라면 아무래도 읽기에 편해야 좀 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가 있을 것이다.
중세시대(Middle Ages)라는 용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리스, 로마의 고대 문화의 고전미를 아름다움의 이상으로 생각하는, 르네상스를 이끈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의식적으로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된 시대 용어인 것이다. 중세라는 용어에는 고대와 르네상스의 중간으로서 인문 사상의 암흑기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중세시대는 19세기의 예술사가 뵐플린(Wolfflin, Heinrich)이 이미 간파했듯이 유럽의 예술과 문화의 기틀을 잡은 시대였으며, 근대 문명의 윤리적 기초 또한 중세시대에 다져진 것이었다. 특히 뵐플린은 중세의 고딕 양식에 대하여 르네상스 미술에 뒤떨어질 것이 없다고 중세의 미술 양식을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르네상스가 지역에 따라 그 도래 시기가 달라 큰 틀에서 볼 때 르네상스도 중세시대에 포함해서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위징아는 이 책에서 중세시대의 말기에 해당하는, 14세기와 15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측면을 다루고 있다. 이에는 15세기에 유럽의 남쪽 이탈리아에서 발아하는 초기 르네상스를 포함하고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방대하고 딱딱한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상상력을 가지고 읽으면 무척 흥미로운 내용을 가진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기도 쉬운 것이 아니지만 다행히 번역자가 옮긴이의 말에서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어 그대로 옮겨 본다.
하위징아는 이 책에서 중세의 모습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석양이 아름답지만 황혼이 가까워 어두워지려 하는 시대, 상징의 꽃이 너무 활짝 피어 이제 막 떨어지려 하는 시대, 놀이 정신에 입각한 삶이 신비의 차원으로 도약하기보다는 이야기의 수준에서 맴도는 시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구원으로 상승하기보다는 감각으로 추락하는 시대, 모든 사상이 어둠과 투명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달빛 속의 대성당에 깃든 시대였다.
왜 이 책의 제목이 하필이면 '중세의 가을'인가를 깨닫게 하는 글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볼 때마다 저물어가는 중세시대의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중세시대를 '성과 속의 혼재', 그리고 '넘치는 상징'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중세시대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중세인들의 모든 것, 즉 정신세계와 실생활을 장악하고 있던 시대였다. 그러나 아무리 종교가 사람들의 정신을 통제한다고 해도 언제나 성스러움 안에서 살아갈 수 없는 법이다. 사회가 성스러움을 강요할수록 속됨이라는 탈출구가 더욱 절실해지는 법이다. 이와 같은 성스러움과 속됨의 어색하지 않은 뒤섞임은 중세인들에게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는 상징체계의 발달을 가져오게 된다. 중세시대에 다양한 '놀이문화'가 발달하는 것도 성스러움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의 표출로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지금도 유럽 사회에 뿌리가 깊은 축제 문화와 귀족들의 결투, 기사도 정신 등이 있다. 예에서 알 수 있듯 성스러움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이들 행위 하나하나가 상징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결투를 놀이라고 한다면 비정해 보일지 모르지만 중세인들은 결투라는 놀이를 통해 귀족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다. 결투가 명예를 지키기 위한 상징체계가 되는 셈이다. 또한 영주에게 속한 기사들에게 영주의 아내라는 귀부인은 넘볼 수 없는 존재이다. 이와 같은 불가능한 현실을 넘어서는 상징체계가 귀부인과 기사의 사랑 이야기로서 음유시인들의 노래가 된다. 특히 왕의 아내가 된 이졸데와 왕의 신하인 트리스탄의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 그래서 죽음으로서 완성하는 사랑을 다룬 트리스탄의 전설은 중세시대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19세기의 산업사회가 노동을 상품화하고 분업화하여 소외 현상을 가져왔다면, 오늘의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을 대신하여 가치 기준으로 등장한 소비를 통하여 우리의 자아를 '물화'하고 '대상화'한다. 쉽게 말하자면 '물화' 혹은 '사물화'는 물질의 소유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이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가 하는 사실이 그 사람의 가치로 판단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상화'는 진정한 자아를 찾지 않고 다른 대상을 마치 자신의 모습인양 투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연예인의 모습을 따르거나 방송 매체가 보여주는 가상을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 즉 후기 산업사회에서 사람들은 이러한 '물화'와 '대상화'를 통해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서 저물어가는 중세시대의 황혼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것일까. 19세기에 출발한 자본주의의 산업사회가 후기 산업사회에 이르러 저물어가고 있다면, 그리고 그 방향이 우리의 자아를 잃어가는 것이라면...
질병과 종교적 속박이 만연했던 중세시대가 현대인이 볼 때 다소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만큼 스스로 상징 체계를 만들어가면서 판타지를 꿈꾸었다면, 오늘의 현대인들은 '물화'와 '대상화'라는 판타지를 통해 소비의 차이라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잊는다.
이렇게 생각할 때 지나간 역사는 그 자체로서도 흥미롭지만 지나간 역사를 통해 지금의 우리 자신을 점검하는 현재적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