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미셸 슈나이더는 슈만의 음악과 내면을 다룬 책 '슈만, 내면의 풍경'을 이 시로부터, 그리고 1854년 2월 28일 을씨년스럽게 겨울비가 내리는 뒤셀도르프에서 시작한다. 이 날은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한 날이다.이날 이후로 슈만은 1856년 7월 29일 사망하기까지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게 된다.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와 어린 딸의 곁을 떠나 자신의 영혼을 유폐시킬감옥에서.
클라라는 이로부터 2년 반 후에야 남편 슈만을 만나게 된다. 슈만이 이 땅에서의 생명을 끝내기 이틀 전이었다. 그러나 이미 육신을 떠난 그의 정신은 사랑하는 클라라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정신은 "그 자신 너머에, 언어 너머에 가" 있었던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슈만은 정신분열증을 앓아 왔고, 그 징후는 그의 음악, 특히 피아노 작품에 드리워져 있다. 미셸 슈나이더는 이를 일컬어 "죽음의 충동에게 주는 보상, 삶 너머로 가는 도강(渡江)의 은화, 고통의 잔돈"이라고 다분히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슈만의 음악은 연주자에게는 가장 연주하기에 어려운 것 중의 하나이다. 일전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첼리스트가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렉쳐 콘서트에서슈만의 첼로 협주곡을 일컬어 "첼로를 위해 작곡된 곡 중 가장 어려운 곡, 이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정복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었다. 얼핏 들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기술적으로는 훨씬 난해한 곡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같은 경우는 연주자의 신체 조건이 따라주지 않으면 연주가 불가능한 곡이다. 자칫 무리하다가는 손가락 부상으로 영원히 연주자의 길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곡의 이해와 해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연주자에게 있어 슈만의 음악은 잘 포착되지 않는 것, 섣부른 해석을 용납하지 않고 연주자 자신을 음악에 맞추어 가야 하는 난해함이다.
이에 대하여 미셸 슈나이더는 "포착했다고 여길수록 음악은 아득한 곳으로 달아나고, 손가락 아래에서 그 격차가 깊어진다. 듣는 이에게도 슈만의 음악은 가로질러 건너야 할 미지의 강이다. 솟아오르지만 이미 뉘엿뉘엿 넘어가는 빛, 도착이자 도망, 다만 꺾이기 위해서 올라가는 하나의 목소리다"라고 말한다.
또한 슈만의 음악에는 시작과 끝이 모호한, 종착지가 없이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듯한 느낌이 있다. 이런 음악적 특성을 분열증이라는 슈만의 성격적 특성에 견주어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슈만의 정신병은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후천적인 그의 삶에서 기인한 면이 있다. 1826년 누이 에밀리에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슈만에게서 처음 우울증이 나타났고, 1833년에는 형 율리우스와 형수의 죽음으로 증세가 악화되었다. 당시 슈만은 일기에 "미치광이가 되고 말 거라는 하나의 강박관념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라고 쓰고 있다. 1834년에는 그의 음악적 분신인 루트비히 슌케가 폐결핵으로 사망, 우울증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왕성한 창작의 시기를 순간순간 맞이하기도 한다. 조울증적인 이런 단층이 그의 음악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흔히 피아노곡의 해라고 일컫는 1838년에는 낭만적인 피아노의 걸작이 왕성하게 작곡되었는데, 이때가 클라라와 가장 적극적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었던 해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를 염두에 둔 창작력의 집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장인인 비크 교수의 반대를 법정 투쟁 끝에 이기고 클라라와 결혼한 1840년에는 그가 작곡한 가곡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127편의 가곡이 한 해에 집중적으로 탄생한다. 이와 같은 창작력의 기복 또한 슈만의 조울증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 생활이 반드시 행복하지는 못했던 것이 슈만의 자의식으로 해서 정신분열증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재능이 있었던 슈만은 청소년기에 자신의 장래에 대하여 시인이 될 것인지 피아니스트가 될 것인지를 고민했었다. 그러나 손가락을 다쳐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하고 작곡을 하는 한편, 음악 평론으로서 브람스와 같은 새로운 작곡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아직 저작권의 개념이 없었던 그 시대에 작곡으로서는 생계를 보장할 수 없었다.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 교수가 결혼을 반대한 이유이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 유럽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인 클라라의 연주에 가족의 생계를 맡겨야 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가진 슈만의 분열증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고통을 느끼는 모든 감각에 거리를 두는 일종의 지각 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정신 분석학자 엘렌 도이치는 이를 일컬어 '고통의 부재'라고 표현한 바, "슈만의 삶과 음악 속에는, 아픔의 원인과 아픔 없는 상태 사이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괴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슈나이더는 "슈만을 연주할 때 우리는 쇼팽이나 브람스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거의 기쁨을 느낄 수 없다"라고 말한다.
정신병원에 머물던 28개월 동안 슈만은 음악으로부터 떠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가족으로부터도 떠나 있었다. 이미 라인강에 몸을 던지기 하루 전에 "당신 정말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싶어요?"라는 클라라의 말에 슈만은 "그래"라고 무심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미 그의 정신은 딴 곳에 가 있었던 것이다.
슈만은 식사 거부로 1856년 7월 29일 오후 네 시에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슈만의 삶은 고통이었지만 그의 음악에는 고통도 없고, 기쁨도 없다. 단지 슈만의 음악은 그의 삶과 죽음을 나타내는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슈만의 음악은 애호가의 입장에서도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음악임에는 틀림이 없다. 뚜렷한 멜로디 라인과 곡의 전개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슈만의 음악이 지닌 낭만성에 매료되기 시작하면 벗어나기도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슈만의 음악적 특성과 슈만이라는 작곡가의 내면을 이 책처럼 깊숙히 분석해 놓은 책은 그동안 없었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 전문가라고 할 수 없지만 프랑스 문화성에서 음악과 무용을 담당하는 업무를 본 인연으로 비평, 음악 이론, 정신분석 분야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저자의 수고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