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 가까이 다가서기

-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의 초상'을 읽고

by 밤과 꿈

재즈 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했을 때 쉽게 좋아해 지지가 않았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었다. 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가 쓴 '그 남자의 재즈 일기', 요아힘 E. 베렌트가 쓴 '재즈 북'과 같은 재즈 입문서를 열심히 탐독하는 한편, '야누스 재즈 카페'에서 재즈 연주회를 찾아 실연을 듣기도 했었다. 그만큼이면 재즈 음악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좋아할 법도 했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안 들으면 그만이겠지만, 재즈 음악이 1940년대 비밥의 시대 이후로 뛰어난 음악성을 확보한 20세기의 주요 음악 현상이었기에 무슨 오기처럼 바득바득 재즈를 들으려 애를 썼다.

이는 내가 한국인이면서 서양음악을 좋아하고 우리 음악에 문외한이라는 불편한 현실이 싫어 한국음악(국악)을 듣고자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처럼 재즈 음악을 쉽사리 가까이하기에 힘들었던 것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그동안 클래식 음악의 문법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 그리고 클래식 음악을 처음 들을 때의 열정을 다시 불사르기 힘들었다는 것 때문에 나에게 있어 재즈 음악은 항상 클래식 음악을 뒤이어 2순위였다.


재즈 음악은 클래식 음악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완성하는 음악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로 이루어진 소나타 형식으로 음악의 얼개를 짜는 것처럼 재즈 음악은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 뒤이어 각 세션 악기들의 변주와 주제 선율로 재현으로 음악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세션 악기들의 변주가 즉흥 연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듣는 사람에게 재즈를 어려운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악곡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처럼 재즈 음악을 들을 때도 하나의 곡도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는 만큼 대표적인 곡에 대한 지식과 연주자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즈 음악에 대한 흥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재즈 음악에 대한 흥미를 붙이기에 적합한 두 종류의 서적이 뒤늦게 출판되었었다. 그중 하나는 남무성이 그리고 쓴 'Jazz it up!- 만화로 보는 재즈 역사 100년'이라는 책이고, 또 하나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음악 에세이 '재즈의 초상(Portrait in Jazz)'으로 지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단한 음악 애호가이다. 그리고 장르를 가리지 않는 음악에 대한 사랑은 그의 소설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가 되기 이전에 재즈바를 직접 운영, 재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재즈의 초상'에는 재즈의 전성기를 이끈 26인의 재즈 명인들의 일생과 음악을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어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전혀 지루하지 않게 책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

일례로 재즈 트럼피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쳇 베이커를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처럼 쳇 베이커를 적절하게 말한 것을 보지 못했다.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재즈사에 이름을 남긴 뮤지션은 많지만 '청춘'이라는 숨결을 이만큼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사람이 그 말고 또 있을까?"


사실 쳇 베이커의 트럼펫 연주가 마일즈 데이비스나 디지 길레스피처럼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고, 보컬 또한 어눌한 것이었지만 그의 음악에는 청춘의 고독감이 잔뜩 배어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유려한 문장도 좋지만 이 책의 가치를 빛내는 또 하나의 요소는 와다 마코토가 그린 재즈 뮤지션 26인들의 초상이다. 정감 있는 와다 마코토의 그림은 책을 또 한 권 사서 그림만 액자에 넣어 벽을 장식하고픈 생각이 들 정도다.

와다 마코토가 그린 쳇 베이커의 초상

이 책은 1998년 열림원에서 '재즈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고, 2006년에는 문학사상사에서 '재즈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판본도 지금은 절판, 2013년에 문학사상사는 2권까지 합본한 '포트레이트 인 재즈'를 출판했다. 새로 나온 판본의 표지가 그다지 마음에 안 들어 2006년판 '재즈의 초상'을 소개했다. 따라서 소개한 책은 중고로서만 구입이 가능하다.

어떤 판본이든 재즈에 흥미를 가지고 접근하기에 가장 적절한 책 중에 하나다.




# 참고로 들을 음악: Chet Baker가 연주하는 'Almost Blue'

https://youtu.be/z4PKzz81m5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