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곧 기도일 수 있다

- 밤과 꿈의 신앙 에세이(4)

by 밤과 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드러내어 기도를 하게 될 때가 있다. 성가대나 소모임에서 대표기도를 할 경우가 되겠다. 또한 한국 교회의 자랑인 새벽기도야말로 갈급한 자기 심정을 온전히 드러내어 기도를 하는 시간일 것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워낙 조용한 교회인지라 통성으로 기도할 일이 없지만, 간혹 새벽기도를 위해 찾았던 인근 교회(코로나 때문에 그 교회에 폐가 될까 싶어 요즘은 아예 가지를 않는다)에서 통성 기도를 할 경우가 있었다. 전혀 분위기가 다른 교회에서 하는 통성 기도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기도를 거듭하면서 느낀 것은 통성 기도가 꽤 효율적인 기도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통성 기도는 기도자를 기도에 집중하게 한다. 그리고 완성된 문장의 사유를 통과하지 않은 꾸밈없는 기도에 접근하게 한다.


그런데 기도의 방법이 무엇이 되었던 우리는 너무 기도의 응답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우리가 기도로 간구하는 순간 이미 응답은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 8)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을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응답을 자신의 요구에 따라 선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엄청난 불신앙이다.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으로 유명한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는 이 책에서 기도에 대하여 "기도의 개념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떠한 응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온전하게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응답을 원하여 기도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허탈감을 느낄 수 있다. 응답은 언제나 오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영적 허탈감은 우리가 기도를 통해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도에 대하여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는 신선한 언급이다.


그렇다면 기도는 우리의 일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평소에 진실한 기도는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일관되게 유지하는 삶의 태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국 교회의 큰 문제 중 하나가 "삶 따로 신앙 따로"라는 교인들의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인으로서 이중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죄책감이 전혀 없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 회개하면 일주일의 죄가 사해진다는 잘못된 자기 최면에 빠져 죄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무감각하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의 말처럼 기도는 "하나님과 온전하게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이 기도라는 내 생각을 이 말에 대입해 본다면 "하나님의 공의에 최대한 자신의 삶을 접근하는 것이 기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언제나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 즉 일상적인 호흡과 발걸음마다에 신앙적 의미를 담는 것이 기도일 수 있지 않을까, 삶이 곧 기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때 기도는 갈급한 간구라기보다는 삶을 성화(聖化)로 이끄는 지속적이고도 일관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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