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슈만의 가곡집 '시인의 사랑'은 이 유명한 시로부터 시작된다. 이 시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독일에서는 5월에 꽃이 피고 실질적으로 봄이 시작되나 보다. 우리나라의 오월은 화사하게 치장을 하고 봄을 알리던 꽃들도 모두 진 이후 여리고 여린 이파리에 푸름이 짙어가면서 여름을 준비할 시간이다. 이와 같이 나라에 따라 시간차는 있겠지만 봄이 떠올리는 이미지에는 사랑과 결부할 수밖에 없는 감정의 공집합이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봄이라는 계절이 연상시키는 새로운 생명의 잉태라는 개념과 근본적으로는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랑의 개념이 다를 수 없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읽었던 '청춘예찬'이라는 오래된 수필이 생각난다. 1930년대에 민태원이 쓴 수필로서 인생의 황금기인 청춘의 시기에 마음에 품는 이상을 격정적인 문장으로 예찬하는 수필이다. 감각적인 문체로 큰 인상을 받았지만 특히 "청춘의 끓는 피"라는 문장은 명문으로 여태 기억 속에 남아있다. 청춘의 끓는 피는 봄의 약동하는 생명력이나 사랑하는 남녀의 설레는 마음과 같은 이미지로 떠올려진다. 이처럼 봄이나 사랑, 그리고 청춘의 이상은 모두 현실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클라라를 향한 사랑이 낳은 낭만주의 가곡의 걸작
슈만이 그의 아내 클라라와 결혼한 1840년은 슈만의 '노래의 해'라고 알려져 있다. 이 해에 가곡집 '시인의 사랑'과 또 하나의 걸작 가곡집 '여인의 사랑과 생애', 그리고 가곡집 '리더 크라이스'를 비롯한 수많은 걸작 가곡들이 이 한해에 대부분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해에 집중된 놀라운 음악적 결과는 음악사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 클라라와의 결혼이라는 인생의 봄이 슈만에게 전해준 선물이라 하겠다.
가곡집 '시인의 사랑'은 슈베르트가 구현한 가곡에 있어서의 피아노의 역할과 음악적 표현력의 확장을 더욱 발전시킨 걸작이다. 그리고 슈만의 가곡 중에서도 인성보다는 오히려 피아노가 주도적으로 악상을 이끌도록 작곡되어 성악가와 피아니스트 모두에게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이처럼 하이네의 간결하고도 서정적인 시를 만나 언어와 피아노의 집중적인 결합을 보여주는 '시인의 사랑'은 독일 낭만주의 예술가곡의 빛나는 성과로 평가된다.
그리고 가곡 분야와 함께 슈만 음악의 중심을 이루는 피아노 독주곡 또한 대부분이 결혼 이전 클라라에 대한 연정으로 작곡된 음악으로 슈만의 경우만 보더라도 사랑은 한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사랑은 삶을 춤추게 한다".
악곡의 구성과 추천 음반
제1곡(아름다운 오월에): 꿈꾸는 듯한 피아노의 선율 위에 사랑을 노래하는 인성이 더한다. 피어나는 사랑의 감정과 마음의 설렘을 피아노가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제2곡(나의 눈물 자국에서): 1곡에서 한껏 고양된 사랑의 감정이 자신의 내면을 향하듯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게 노래한다.
"내 눈에서 꽃은 피어나고/ 내 한숨은 밤 꾀꼬리의 노래가 된다./ 나를 사랑해 준다면 이 꽃을 바치리./ 그대 창가에/ 밤 꾀꼬리의 노래가 속삭이리."
제3곡(장미와 백합과 비둘기):
"장미와 백합과 비둘기와 태양을/ 나는 사랑했다네./ 지금은 오직 한 사람뿐.../ 나는 사랑한다네, 오직 한 사람을..."
제4곡(그대 눈동자를 볼 때): 감미로운 선율 위에 단조로운 이야기가 다정하게 전달된다.
"그대 눈동자를 보면/ 모든 슬픔은 사라지고/ 그대 입술에 입 맞추면/ 나는 삶을 되찾네.../그대가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나는 울게 되리라."
제5곡(내 마음을 백합 숲 속에):
"백합 꽃봉오리에/ 내 마음을 담으리/ 백합이 숨을 쉬며/ 그대를 노래하리..."
제6곡(신성한 라인강의 흐름에): 극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는 이 노래는 피아노의 왼손 음형이 성당의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을 묘사할 때 오른손의 반주는 라인강의 물결을 묘사,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다.
제7곡(나는 원망하지 않으리): 이 곡부터 사랑의 기쁨은 사라지고, 비통한 실연의 노래가 된다.
"나는 원망하지 않으리./ 비록 가슴이 찢어질 망정.../ 나는 알고 있어./ 네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나는 원망하지 않으리."
제8곡(만일 저 꽃이 안다면): 속삭이듯 연주되는 피아노의 반주에 노래는 어느덧 슬픔이 된다.
"내 마음이 얼마나 상처뿐인지를/ 저 작은 꽃이 안다면/ 나와 함께 울어줄 것을.../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르지만/ 내 마음의 상처를 아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자기 손으로/ 내 마음을 찢어 놓은 그 사람."
제9곡(바이올린과 플루트의 가락에):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가락이 들려오고/ 그리고 나팔 소리도/ 가락에 맞춰 혼례의 춤을 추는 사람은/ 나의 사랑..."
제10곡(그 노래를 들으면): 민요풍의 선율은 끊어질 듯 추억에 젖은 시인의 슬픈 마음을 노래한다.
"옛날에 그녀가 불러 준/ 그 노래를 들으면/ 내 마음은 괴로움에/ 터질 것만 같아..."
제11곡(젊은이는 처녀를 사랑했다):
"어떤 젊은이가 한 처녀를 좋아했지만/ 그 처녀는 다른 사람을 좋아했다네.../ 옛날이야기이지만/ 변하지 않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내게도 생긴다면/ 내 마음은 무너질 거야."
제12곡(밝은 여름 아침에): 하강하는 펼친 화음의 피아노 선율을 타고 노래는 부드럽고 담담하게 불린다.
제13곡(나는 꿈에서 울었다):
"... 나는 꿈에서 울었네./ 네가 진심인 모습을 꿈에서 보고/ 꿈을 깬 후/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네."
제14곡(밤마다 꿈에):
"밤마다 꿈에, 나는 너를 만나/ 너의 다정에 소리 내어 울며/ 나는 네 발아래에 무너진다.../ 그러나 꿈을 깨면/ 너는 아무 말이 없다."
제15곡(옛날이야기에서): 괴로운 사랑의 추억은 열정을 불러오지만, 흥준이 가라앉으면 남는 것은 체념뿐.
제16곡(지나간 날의 지겨운 노래): 사랑의 노래를 관에 넣어 바다에 던져 버리자는, 사랑의 감정을 정리하려는 의지에 찬 마지막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