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는 풍경(5)
지난 토요일에 단원으로 있는 합창단이 강화도에 있는 흥천감리교회에서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흔히 갖는 초청 연주회가 아니라 합창단이 자발적으로 찾아간 경우였다. 이와 같은 연주회라면 그동안 호스피스 병원, 교도소와 군부대에서 해 왔었다. 하지만 교회의 경우 그동안 초청 연주의 형태로 방문을 해 왔었던 것이다. 초청 연주의 경우 일백만 원 정도의 사례를 받아 합창단의 운영에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천교회에서의 연주를 사례금을 받는 초청 연주가 아닌, 자발적인 음악회로 기획한 이유라면 110년의 긴 역사를 가진 이 교회에서 교회가 설립된 이후 단 한 번도 음악회가 열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합창단의 설립 취지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음악적으로 소외된 곳에 찾아가 음악회를 연다는 것으로 그 취지에 부합되는 조건을 갖춘 곳이 흥천교회였기 때문이다.
흥천교회는 개신교가 자리 잡은 역사에 버금가는, 오래된 교회의 역사 이외에도 외부인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다.
먼저 교회의 이름을 티맵으로 찍고 교회에 도착하면 넓은 주차장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시골 교회의 규모로는 광활하다고 표현해도 어울리지 않을 넓이의 주차장이다. 110년이라는 교회의 역사에서 음악회 한 번 열지 않았다는 말에서 느껴지듯 외부인의 방문도 거의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 까닭을 알고 나면 한 번 감동을 받는다. 화강암에 비석처럼 새긴 교회 표지석이 서 있는 입구에 바로 인접하여 종탑이 있어 지금도 종을 울리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종소리가 이웃에는 민폐가 될 수도 있는 일, 이웃집을 한 집 두 집 구입하여 주차장이 된 것이란다. 도시 교회라면 그 공간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겠지만, 교인이 적은 시골 교회라 달리 공간을 활용할 방안도 없었을 것이다.
이 날은 단원들이 타고 온 차량에 흥천교회의 교인뿐만 아니라 이웃한 교회의 교인들까지 음악회를 찾아 제법 주차장이 차 보였다.
이웃한 교회의 교인들 뿐만 아니라 이웃 교회의 담임목사까지 음악회에 참석했는데, 이 또한 도시 교회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음악회가 시골에서 흔치 않은 행사인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감리교회의 역사와 이에 관련한 강화도의 신앙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화도의 기독교 선교 역사는 감리교와 성공회에 의해 시작되었다. 감리교의 선교사 존스에 의해 1893년 교산교회가 설립되면서 시작된 강화도에서의 감리교 역사는 감리교를 이 지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개신교단으로 만들었다. 이백 여개의 교단으로 분리된 장로교와는 달리 단일 교단을 유지하고 있는 감리교의 특성과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가져다주는 개 교회 간의 긴밀한 유대감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예배당은 고색창연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리모델링을 거쳐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목질의 벽체와 제단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지나치게 현대적인 느낌을 주지 않아 외관과의 이질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천장에 배치된 십자가 형상의 조명이 실내의 밝음을 주도하고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목질로 사면을 감쌌음에도 불구하고 잔향이 없어 음악회를 하기에는 썩 좋은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흥천교회가 작은 시골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네 교회를 개척했다는 사실 또한 감동을 주는 스토리였다. 그리고 연습 시작 전부터 기도를 해 주신, 삼십여 년을 흥천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은퇴를 몇 년 앞둔 담임목사님의 선한 인상도 너무 좋았고.
비록 단원 모두가 같이 하지 못한 음악회였지만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음악회가 시작되고 준비한 노래를 한 곡씩 부르면서 청중들의 진지한 감상 태도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본래 무대에 선 사람은 관객과의 교감을 통해 고무되는 법이다. 합창단 단원의 표정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진지한 청중에 모습에 오히려 우리가 감동을 받았던 시간이었다.
음악회가 끝나고 교인들의 인사도 많이 받았다. 홀가분하고 기쁜 마음으로 예배당을 나오니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고, 철새는 무리를 지어 보금자리를 찾아들고 있었다. 교회에 폐를 끼치기 싫어 사전에 사양을 했었는데도 교회에서 순무김치와 밴댕이 젓갈 등 강화 토속음식을 곁들인 저녁을 준비했다. 식사가 준비된 카페 마라나타 앞에는 교회와 역사를 같이 하는 소나무 한 그루가 보기에도 아름답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나오니 세상에는 어둠이 짙고 예배당의 첨탑에서 불을 밝힌 십자가가 더없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십자가와 나란히 선 둥근달과 화성이 또한 반갑다. 집으로 돌아갈 길이 멀지만 마음은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그 행복감은 단순하게 음악회를 잘 마쳤다는 사실에서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흥천교회와 교인들의 모습에서 느끼는 믿음의 아름답고 튼튼한 뿌리를 느꼈기 때문이다. 먼저, 교회도 교인들도 온화하다. 온화한 표정은 긍정적인 태도에서 온다. 교인들도, 교회도 온화한 분위기를 준다는 것은 모두가 굳건한 믿음 위에 서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교회도 교인들도 긍정적으로 만든다. 교회나 기독교인이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은 교회가 믿음 위에 올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흥천교회의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도 온화한 모습에서 튼튼하고도 아름다운 믿음의 뿌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아름다운 믿음의 뿌리를 발견한 흥천교회에서의 음악회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추억이 되리라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