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티나, 이토록 아름다운 인생을

- 음악으로 쓰는 에세이(1)

by 밤과 꿈

유난히 굴곡진 인생을 만날 때가 있다. 주로 문학 작품에서 파란 많은 인생의 전형을 만나게 되지만, 사실과 같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도 굴곡진 인생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소문난 인생의 자서전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주변을 잘 살펴보면 비록 폼은 나지 않더라도 그런 인생 한 둘 쯤은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이미 지나왔기에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많은 곤란을 겪어왔는지를 잊고 있는 우리 스스로가 그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요즘 핫한 영화로 ‘서울의 봄’이 있다. 12. 12 쿠데타로 권력의 전면에 부상한 신군부, 이후 5. 18 광주에서의 학살을 거쳐 제5 공화국이라는 독재 정권이 탄생하기까지의 굴곡진 우리 현대사에서 전환점에 해당하는 1980년 서울의 봄을 소재로 한 영화다. 이 영화가 관객 900만 명을 돌파했단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우리 역사의 암울한 한 시대를 알고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다. 나는 암울했던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다. 그 시대의 정치 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서 추억에 잠길 만큼 그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굴곡진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굴곡진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본다. 같은 과 같은 학번에 경찰인지 다른 기관 소속인지는 모르지만 프락치가 있었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사 학년 과대표도 프락치였다. 본인들은 자신의 숨겨진 이력이 들통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를 비롯한 사회 현실에 관심이 많았던(당시에는 운동권이라는 표현조차 없었다) 소수의 과 친구들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같은 과 친구들을 감시하고 의심해야 하는 시대가 정상적인 시대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에 프락치 활동을 했던 그 친구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5. 18 광주학살에 참여했던 공수대원의 증언(양심 고백이라는 표현보다는 증언이 보다 사실적이다)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사실 당시의 군인 또한 시대의 피해자일 수 있다. 자발적인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군인의 신분으로 집단의 광기에 가까운 학살에 가담한 죄책감과 트라우마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십여 년 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학살의 주역들은 지금까지도 합당한 죗값을 치르지 않았으니 역사적 진실에 대한 회의를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의 등장인물 중 라라의 남편 파벨 안티노프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지속된 내전에서 적군에 가담, 격동의 시간에 자신을 던진다. 한편 라라의 연인인 유리 지바고는 격동의 시간과 혁명에 대한 환멸을 라라와의 사랑으로 견딘다. 그러나 혁명이라는 격동의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던 모두가 굴곡진 시대를 비켜가지 못하는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시대에 따라 평가를 달리하는 역사라면 그 진실은 시대의 격류에 휩쓸려 상처받고 아파하는 인간 군상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디어 헌터’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월남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광기, 그리고 전쟁이 개인의 삶에 남긴 상흔을 한 마을에 살다가 월남전에 참전한 세 젊은이들의 모습에 투영한 영화다. 이 영화가 미국인의 시각으로만 전쟁을 조명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가 일반적이었던 당시에 전쟁을 직접 겪은 젊은이의 사적인 시선으로 그냥 이해해 본다. 영화의 아픈 내용과는 달리 OST가 너무 아름답다. 스탠리 마이어스가 작곡하고 저명한 클래식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가 연주한 OST, ‘카바티나’. 로버트 드 니로가 분한 마이클이 사슴 사냥을 나섰다가 사슴의 눈망울을 보고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는 상징적인 엔딩 신에 흐르는 음악이다. 무거운 영화의 줄거리에 비해 과하게 아름다운 선율일 수도 있겠지만,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음악이다. 왜일까? 그 해답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한 시대를 이끌고 간 사상가나 위정자가 아닌, 격변의 시간 속에서 삶의 비참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 즉 1980년의 광주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아야 했던 사람들, 살아서 아픔을 평생 겪어야 하는 가족들, 또한 아무 이유도 없이 학살에 가담해야 했던 사람들이 시대를 증언하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실 속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월남전과 그 외 사람에 의해 자행되는 온갖 삶의 비참도 광주 학살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진실은 오직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있다.


카바티나가 흐르는 영화 ‘디어 헌터’의 엔딩 신


사람에 의해 사람에게 가해지는 역사 속의 비참함은 그 자체로는 추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비참함이 어떤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면 비참한 삶의 양태에서 일종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추미(醜美)- 즉, 추한 것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케테 콜비츠의 예술에서 느끼는 감정이 그런 것일 수 있다. 만일 비참한 국면이 추악한 역사의 증언이 될 수 있다면 그 아름다움은 숭고한 것이 되지 않을까.

한 개인의 삶을 볼 때 평탄한 일생이란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비교적 평탄한 삶은 있겠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삶에는 굴곡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맺은 인연의 생사가 갈릴 때 그 슬픈 현실에서 인생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진면목은 기쁨의 시간보다는 슬픔의 시간에서 더 잘 발견할 수 있다. 기쁨이나 즐거움이 한순간의 환영처럼 서둘러 우리의 곁을 떠나간다면, 슬픔이나 아픔 같은 감정은 마음에 오래 머물러 되새김하면서 삶에 깊이를 더하게 된다.


다시 카바티나, 카바티나(cavatina)는 원래 바로크 시대의 칸타타나 고전주의 시대의 오페라 세리아에 등장하는 성악 형식이지만 성악풍, 그러니까 노래와 같이 간결한 선율의 기악곡에도 카바티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나는 카바티나 중에서도 베토벤의 것을 가장 좋아한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 13번의 5악장으로 작곡된 카바티나. 바로 베토벤이 눈물로써 작곡한 곡(현악사중주곡 13번의 악보에는 베토벤의 눈물 자국이 남아있다)이다.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과 ‘장엄 미사’를 작곡한 후 생의 마지막으로 작곡한 곡들이 12~16번 현악사중주곡이다. 이 시기에 쓴 베토벤의 글은 “나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나는 오직 내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라고 썼다. 그만큼 이 음악에는 베토벤의 고백이면서 유언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3번의 경우, 원래 6악장으로 작곡되었다. 마지막 푸가 악장이 지나치게 길어 따로 독립시키고, 새로 쓴 종결 악장으로 대체하여 연주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보통 현악사중주라는 장르가 네 개의 악장으로 작곡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예로 작곡 당시 베토벤의 복잡했던 심경을 보여주는 듯하다.

현악사중주단이라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는 반드시 도전해 보고 싶은 과업일 만큼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들이 남긴 음반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카페 현악사중주단과 함께 1930년대 최고의 현악사중주단으로 군림했던 부시 현악사중주단의 음반이 있다. 비록 전곡 연주를 음반으로 남기지는 않았지만 이 전설적인 현악사중주단이 남긴 연주는 현대의 현악사중주단이 흉내 낼 수 없는 에스프리가 있다. 특히 13번의 연주는 부시 현악사중주단이 미국으로 집단 망명한 직후의 녹음이라 느낌이 남다르다. 영국에서 클라리넷 연주자인 레지널드 켈과 함께 브람스의 클라리넷 오중주곡을 녹음한 뒤 고국인 독일을 등지고 바로 배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한 것이었다. 나치 독일의 간섭과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부시 현악사중주단이 남긴 다른 현악사중주 녹음과는 달리 망명 후 미국에서 녹음된 13번의 연주가 이전의 연주에 비해 기량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망향의 정서를 느껴서인지 감동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상의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다.

부시 현악사중주단의 연주가 나에게 각별한 이유가 따로 있다. 작은 형이 지방 출장 중 뇌출혈로 쓰러졌었다. 결국 형은 세상을 떠났고 장례를 준비하면서 잠시 집에 들렀을 때 마음을 진정시키며 들었던 음악이 부시 현악사중주단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 13번 중 ‘카바티나’였다.

지금도 이 연주를 들을 때마다 베토벤이 말년에 가졌던, 그리고 고국을 떠난 음악가들의 비애감과 형을 떠나보낸 내 비애감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감정을 느낀다. 다시 말하지만 슬픔이나 아픔은 삶에 깊이를 더한다. 그리고 뛰어난 음악의 배경으로 베토벤의 고난과 이에 꺾이지 않는 의지의 삶을 떠올리면 숭고미(崇高美)를 느끼게 된다. 슬픔이 있어 인생은 더할 나위가 없이 아름답다. 위대한 예술은 삶의 국면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 베토벤의 카바티나가 주는 감동 또한 그렇기에 카바티나에 담긴 슬픔이 아름답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3번 중 카바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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