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더라 2(10)
지난 주일 예배의 설교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구약성경의 이사야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사야서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유다왕국의 현실에 대한 회개가 전 66장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사야서의 저자에 대해서 논란이 없지는 않지만,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라는 전통적인 이해를 교회는 받아들이고 있다. 방대한 양의 글에서 이사야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오직 하나님 만이 희망이다”라는 것으로 주일 예배의 주제이기도 했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유다왕국을 향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유대인들에게 통렬하게 말하고자 한 것이 바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붙들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유다왕국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었기에 지금의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독교라는 종교 이야기를 하고자 이사야서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최고 덕목이 사랑이라면, 사랑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은 희망이다”라고.
희망이라는 말은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랑이 곧 희망이라면, 사랑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지극히 현재적이다. 지금이 영원인 것처럼 죽어라고 사랑하다가 이내 사랑은 식어 남남이 되어 갈라 선다. 서로가 집착한 결과라고 하겠다. 흔히 부부는 나이가 들어 정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나는 이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젊었을 때의 불 같은 사랑, 즉 현재적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 것처럼 말하고, 정념이 사라진 부부의 교감하는 마음을 정으로 치부하며 사랑과 구별하는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집착이 불러오는 사랑의 정념은 소유와 독점이라는 감정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고 그 감정들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모든 동물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식물처럼 자웅동주이거나 미생물, 혹은 원시적인 동물에서 볼 수 있는 자웅동체가 아닌 대부분의 동물들은 암컷과 수컷으로 구별된다. 그리고 그렇게 성이 나누어진 큰 이유는 생물학적 기능이 고등화되면서 암수가 구별되는 것이 종의 유지와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종교적 믿음으로 이 사실을 부정한다면 대화가 무의미하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들처럼 본능에만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며, 심지어는 영성까지 지닌 존재이다. 이 점에서 인간이 자연의 다른 동료와 구별되듯이 인간은 또한 오늘 만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들과 구별된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짝을 맺고 새끼를 낳아 기른다. 그러나 그 행동은 본능에 따른 것이지 사랑의 결과는 아닌 것이다. 물론 짝짓기를 하면서 신혼의 단꿈에 젖거나 가정을 이루는 행복과 함께 미래를 설계할 일도 없다. 오로지 인간 만이 내일을 꿈꾸고 사랑을 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현재적 가치가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가치여야 한다. 사랑은 인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착은 사랑의 언어가 아니다. 현실을 붙들고 늘어지는 집착, 그 소유와 독점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출구가 없는 집착이 오히려 사랑을 질식시킨다. 진실한 사랑은 그 패러다임 너머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착하는 사랑의 끝에 드리운 허무의 짙은 안개를 걷어낼 때 사랑은 진실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두텁고 강렬한 유화가 아니라 수채화처럼 가볍고 맑은 모습일 것이다. 젊은 날의 사랑은 밀물처럼 마음에 휘몰아쳐 왔다가 언젠가 썰물이 되어 마음에서 빠져나가는, 아쉬운 한숨과 같은 것이다. 그 사랑은 떠나갈 때는 깃털처럼 가볍게 떠나지만, 마음에 무거운 여운을 남긴다. 사람에 따라 여운은 가벼운 풍랑이 되기도 하고, 높은 파고에 마음이 전부 침몰하기도 한다. 그렇게 사랑이 반드시 무거울 필요가 있을까? 사랑이 무거우면 사랑의 상흔도 깊어 쉽게 아물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아물지 않는 상흔 때문에 젊은 날의 강렬했던 사랑을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이후의 사랑을 정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그 사랑의 강렬함으로 대부분 문학작품이지만 죽음까지 불사하는 사랑도 만나게 된다. 누구나 한 번은 (죽을 만큼?) 아픈 사랑을 경험한다. 그때 사랑의 열정을 모두 소진해 버린 듯 이후로 사랑은 쇠잔한 초겨울의 햇살처럼 씁쓸하게 반추하는 지난 시간에 머물고 만다. 그러나 사랑은 희망의 언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록 지난 시간 속에서 사랑이 광포해서 상처가 컸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랑은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